모니터 9대와 눈싸움…점심약속은 꿈도 못꿔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장 마감 전인 금요일 오후 2시반. 한국증권 19층에 자리잡은 트레이딩룸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트레이더들의 손가락은 더욱 빨라진다.

"350원에 때려. 아니, 지금 말고 40초에 때려라."

"어? 신한지주 이상한데? 튀는 거면 따라가지마. 3~4만주만 사. 그래도 시장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안 돼."

주식워런트증권(ELW) 트레이더인 이창일 DS부 차장은 주니어 트레이더에게 호가 제시할 것을 지시한다. 주가연계증권(ELS) 트레이더인 표승렬 차장 역시 주니어 트레이더에게 주식을 매수하라고 이야기한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는 있지만 시선은 각각 책상 앞에 놓인 9개 모니터에 고정돼 있다. 손가락 만이 빠르게 움직일 뿐이다. 간혹 영어로 주문을 넣는 전화통화 소리도 오간다.

"에휴.. 너무 헐값에 팔았네." 한 쪽에선 웃음 섞인 탄식이 나온다.

"모비스, 모비스! 5000주만 쏴줘라." 또 다른 쪽에서는 ELS 트레이더와 옆자리 ELW 트레이더 간의 주식 '맞교환'이 이뤄진다.

◇ "점심약속? 꿈도 못꿔요" "술은 금요일이나 옵션만기일에 몰아서"= 한국증권에는 ELS 트레이더 5명, ELW 트레이더 5명이 근무하고 있다. 10명의 트레이더들은 대부분 아침 7시반~8시 사이에 출근한다.

출근한 뒤에는 전날 뉴욕 증시 등 장을 보고 기업들의 공시사항을 체크한다. 이 시간에 하는 일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시스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을 경우 9시 개장전까지 반드시 정상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9시 개장과 함께 트레이더들은 6시간 동안 꼼짝없이 '붙박이'가 된다. 한 사람 자리에 6~9개의 모니터를 켜 놓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눈이 핑핑 돈다.

ELW 트레이딩을 맡고 있는 이창일 차장 앞에는 9개의 모니터가 놓여 있다. ELW 트레이딩 관련 화면이 4개, 해외증시 및 선물 시황 관련 화면이 3개, 주가 추이 볼 수 있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화면이 2개다.

장중인 12~1시에 남들처럼 점심 약속을 잡는다는 건 꿈도 못꿀 일이다.

"점심은 매일 시켜서 먹습니다. 점심약속은 금융감독원 사람들을 만나거나 하는 피치 못할 약속 아니면 못잡죠."

7년째 트레이딩을 하고 있는 이 차장은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고 위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매일 피자 김밥 햄버거 따위로 점심을 때우니 위장이 튼튼할 리가 없다. 또 무엇보다 트레이더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서승석 한국증권 DS부장은 "트레이더 오래 한 사람치고 위장 건강한 사람이 없다"며 "그 만큼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처럼 장 등락폭 큰 시장에서 ELW 트레이더들은 그야말로 피가 마른다. 서 부장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여성 트레이더의 경우 아이를 가졌을 때 일을 계속할 경우 태아한테 매우 안 좋다"고 덧붙였다.

표 차장은 "투자자에게 호가를 대줘야 하는 ELW 트레이더들에 비해 ELS 트레이더들은 그나마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번 손가락 클릭에 100~200억원의 돈이 뭉텅으로 오가는 트레이더 입장에선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표 차장은 한국증권이 장외파생상품(OTC) 인가를 받은 지난 2003년부터 트레이더로 활동해온 초창기 멤버다.

트레이더들은 대부분 장 마감 뒤, 건강을 생각해서 30~40분 정도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며 머리를 식힌다.

장이 끝났다고 땡! 하고 퇴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ELS 트레이더들은 장 마감 뒤 정리, 계산해둬야 할 업무가 많은 편이다. ELW 트레이더들도 업무를 마감하면 저녁 7시가 넘기 마련이다.

또 퇴근을 하더라도 다음날을 위해 저녁약속을 잡긴 어렵다. 술을 마셔도 다음날 증시가 열리지 않는 금요일 저녁에 한꺼번에 '몰아서' 마시게 된다. 서 부장은 "옵션만기일이 있는 매달 둘째주 목요일은 다음날 장에 큰 변동이 없어 부담이 적다"며 "이날 저녁은 트레이더들이 술 마시는 날"이라고 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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