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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하나 더 낳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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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태평양 남서쪽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는 특이한 성(性) 풍속이 있었다. 아내가 애를 낳으면 남편이 몇년간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다. 또 아내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이는 페미니즘의 발로(發露)가 아니었다. 마땅한 피임법이 없는 상황에서 연년생(年年生)으로 애를 낳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었다. 19세기 이 땅에 들어온 외지인들은 원주민에게 각종 피임법을 보급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예를 들면 거의 벌거벗고 다니는 원주민들이 콘돔 휴대를 좋아할 리 만무했다. 한참 뒤에야, 그것도 서서히 피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느 사회든 인구 억제 수단으로 피임법을 보급한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이를 실천하기까지 보통 수십년이 걸린다. 당연히 남태평양 원주민의 경우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게다.

국내에서 산아(産兒) 제한이 국책사업으로 채택된 것은 1961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서다. '피임기구의 수입금지 규정을 없애고 콘돔을 국산화해 값을 낮춰야 한다'. 당시 국내에 파견돼 있던 미국 인구위원회의 자문단은 이렇게 주문한다. 이에 정부는 일본에서 중고 설비를 급히 들여와 콘돔을 찍어낸다. 또 64년 보사부가 나서 자궁내 피임장치 시술 등의 가족계획 사업을 벌인다. 하지만 '산 입에 거미줄 치랴' '불임수술을 하면 정력이 감퇴한다'는 속설에 밀려 90년대 들어서야 출산율이 적당 수준으로 떨어진다. 심지어 사회 통제가 철저한 북한도 60년대 시작한 정책이 효과를 거둔 건 20년 뒤고, 30년 전 가족계획을 벌인 중국은 아직도 고전 중이다.

최근에는 다산(多産) 정책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진작 출산율이 떨어진 선진국뿐 아니라 일부 후진국.개도국도 묘안을 짜내기에 바쁘다. 북한의 경우 96년 산아제한 규정을 바꿔 애를 많이 낳는 여성에게 혜택을 주고 낙태수술을 금지했다. 얼마 전에는 전국어머니대회를 열어 출산을 독려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자녀 하나 더 낳기' 구호가 나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피임기구 값을 올리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처방을 내놓아도 출산율이 갑자기 올라갈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의 태도를 바꾸는 데는 '세월'이 필요한 법이다.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