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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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32) 『거기도…』 하고 이시다가 말했다.
『산 있고 나무 있고 그렇겠지요.저는 조선을 모른답니다.』 명국은 흐린 눈으로 벽에 걸려있는 일장기를 바라본다.다 있지,다 있었지.
눈을 감으며 명국은 마음이나마 저 먼 곳으로 가 있기를 바란다.왜 옛날 생각이 나나 몰라.여기 와서 한번도 아이들 생각을하지 않았지.애비는 죽었다.그런 줄 알아,하며 살았지.
이제 가겠지.절뚝거리며 찔룩거리며 가리라.고향으로 가리라.누가 있을까.마누라 살아 있으면 자식도 있겠지.히로시마로 떠날 때 그 말은 했으니까.내 목숨 붙어 있으면 네 목숨도 있는 거다.그랬으니까.
『이제 좀 나으시면,저 밑에 산보도 가고 그러시면 됩니다.』『산보?』 명국이 이시다를 올려다 보았다.
『지금…』 『날보고 산보라고 하셨소?』 『네.』 『산보라니.
』 『걸으실 수 있어요.다들 그렇게 걸어내려 갑니다.모르셨어요? 걸어내려가면서 저보고 손 흔드셨습니다.그때마다 울며…그렇게살았답니다.』 명국이 물었다.
『결혼은 하셨소?』 잠시 말을 끊고 이시다는 명국을 내려다보았다.소리없이 웃는 이시다의 얼굴을 명국은 보고 있었다.
몸을 돌린 그녀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수건을 들고 다가왔다.천천히 손이 내려와 명국의 눈가에 남아 있는 눈물을 닦아냈다.이시다가 말했다.
『남편은…어느 날 그러셨어요.나는 떠난다고.나라를 위해 간다고.』 명국이 떨리는 손으로 움켜쥐었다.토닥토닥 그 손을 쥐어주면서 이시다가 말했다.
『그렇게 가더니 어느 날 돌아오셨습니다.헌병이 칼 차고,흰 항아리 하나 들고.』 『돌아가셨습니까?』 『죽었을 리가 없지요.제 마음에서.』 그런 건가.남자와 여자라는 게 그런 건가.명국이 이를 악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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