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독재자의 장례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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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례식은 살아있던 사람을 영혼의 세계로 떠나보내는 장엄한 儀式이다.당사자의 삶이 제아무리 화려하고 찬란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떠나보내는 儀式이 초라하거나 보잘것 없다면 살아있던 때의 偉容마저도 변질되거나 퇴색해 버리기 일쑤다.그러나 逆說的으로 생각하면 장례식은 어디까지나 뒤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儀式일 뿐그것이 어떻게 치러지든 죽은 사람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다.『정승이 죽으면 모른체 해도 정승집 개가 죽으면 인사를 차려야한다』는 우리네 속담도 죽음에 뒤따르는 장례 의식의 의미를 일깨운다. 생전에 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거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렸던 사람의 장례식인 경우에는 더욱 두드러진다.정치학자들은 특히 카리스마的 최고 통치자가 죽는 경우 그의 장례식이어떻게 치러지는가 하는 것이 후계구도와 밀접한 관계 가 있다고본다.『카리스마的 정치지도자의 죽음은 권력투쟁의 전주곡』이라고말하는 사람들도 있다.장례식이 거창하고 화려할수록 행사를 주도한 사람이 죽은 사람의 위치를 승계한다는 것도 定說처럼 되어있다. 1953년 蘇聯의 스탈린이 죽었을때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흐루시초프가 그렇고,76년 中共의 毛澤東이 죽었을때 紫禁城에 특별히 마련된 사열대에서 추모연설을 한 華國鋒도 마찬가지다.그러나 그렇게 권력을 승계했던 사람들이 權座를 오래 유 지하지 못했던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흐루시초프는 9년만에 브레즈네프에 의해 축출되는 신세가 됐고,華國鋒은 불과 4년만에 權座를 내줘야 했던 것이다.
金正日은 이미 오래전부터 金日成에 의해 世襲권력자로 점찍혀 있었다는데서 위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그러나 金日成의 장례를어떤 규모,어떤 방법으로 치를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을 법하다.간소하고 조촐하게 치르자니 도리가 아닌 듯 하고,세상이 떠들썩하도록 거창하게 치르자니 세계의 이목은 물론 北韓 내부의 시선이 곤혹스러웠을는지도 모른다.장례식을 전례없이 이틀 연기한 것도 그같은 갈등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아무튼 金日成의 장례식이 金正日에 게는「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고,그렇기 때문에 그 규모.방법은 앞으로 북한의 권력구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는 점에서 두고두고 관심의 초점이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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