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축구 지구촌百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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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월드컵에 울고 웃는다.월드컵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고 불의의 사고소식도 속속 날아들고 있다.
우선 불가리아의 4강 진출에 내전중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수도 사라예보에도 축포가 울려퍼져 잠시나마 전쟁의 시름에서 벗어났다.언어.종교적으로 불가리아와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는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불가리아가 골을 넣을 때마다 공중에 축포를 발사하며 즐거움을 만끽한 것.특히 2차대전의 숙적으로 여기고 있는 우승후보 독일을 불가리아가 2-1로 물리치자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승리를 기뻐했다.
불가리아에서도 대소동이 벌어졌다.11일 수도 소피아 중심가 광장에 운집한 수천명의 군중들은 맥주와 위스키 잔을 쳐든채『스토이치코프를 대통령으로!』라고 외치는등 승리에 한껏 도취했다.
부족간의 충돌이 계속중인 르완다에서는 월드컵기간동안 휴전이라는 일시적 평화가 찾아들었다.수도 키갈리의 난민캠프에는 아이들은 물론 병사들도 월드컵 중계를 보느라 못이 박힌듯 TV앞을 떠나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도 못한 태국은 결승전이 벌어지는 18일 전국 2천1백40개 중학교에 자체 판단에 따라 휴교해도 좋다는 파격적인 선심 조치를 내렸다.이 조치로 중계방송을 보기위해 집단결석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게 됐다.
월드컵은 슬픈 이야기도 많이 전한다.
방글라데시의 한 40세 남자는 아르헨티나가 16강전에서 루마니아에 3-2로 패배하자 이를 비관,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아르헨티나에서도 43세의 열성 남자가 TV 시청도중 자기나라의 패배에 쇼크를 받아 그 자리에서 비명횡사했다 .
한편 이탈리아가 나이지리아를 2-1로 꺾던 6일밤 나폴리에선15세 소년이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아버지의 권총을 오발,옆에있던 사촌이 애꿎게 숨졌다.지난달 18일 마카오에서는 이틀밤을계속해 월드컵 중계방송을 시청하던 다방주인이 심장발작을 일으켜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중계방송을 보는 강행군이 과로로 연결돼 초반 몇게임을 보다 그만 쓰러져버린 것이다. 〈金相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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