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新左翼의 弔問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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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KAL機 폭파범 金賢姬는 전향한 뒤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다.신앙 간증도 다닌다고 한다.지난 날 그녀를 지배했었던 金日成의 그림자는 사라졌고 그녀도 북쪽의 唯一체제와 가슴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했다.
적어도 그렇게 믿어졌다.그런데 어 느날 누군가가 『김일성』이란 말을 하자 무심코 앉아있던 그녀가 벌떡 일어서더라는 것이다.말끔히 씻어낸 것 같았던 金日成의 그림자가 그녀의 가슴 깊이無意識의 족쇄로 남아있었던 것이다.金日成은 그처럼 북한주민의 의식 깊은 곳에 神으로 도사리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 金日成 사망후 연일 TV로 방영되는 平壤의 弔問광경을 보면 북한주민들에게 있어 金日成의 位相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토록 만든다.거대한 金日成 銅像 앞에 몰려드는 弔問人波는 과연 생전의 神的인 절대권력의 크기에 비례 하는 듯 엄청나다.여인들.어린이들.학생들.청년들.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통곡하며 울부짖는다.그런데 가까이 클로즈업되는 조문객들의 울부짖는 몸짓이나 표정들이 썩 자연스럽지 못하다.특히 강조되는듯한 군인들의 조문 풍경도 그렇다.
가슴을 쥐어뜯는 군인,슬픈 나머지 쓰러져 나둥그러지는 병사,온 얼굴을 찌그러뜨리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훈장을 주렁주렁 단 장교…. 이들의 애도모습은 TV카메라를 의식해서 그런지 아니면방송국측 설명처럼 北韓의 선전프로여서 그런지는 몰 라도 어쩐지과장되어 있다.
南측 대표들이 平壤을 방문했을 때 재봉틀 돌리는 여인들이나 어린이들이 「통일의 그날」을 외치면서 주룩주룩 흘리던 눈물이나방송.무대의 사회자들이 지어내는 假聲들이 우리에겐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저들에게는 이상스럽지 않았다면 이런 과장된 몸짓과표정들이 저들에게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그처럼 북한주민들의 가슴속에 군림해온 神的인 독재권력자에 대한 조문치고는 너무 作爲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그것은 존경하는 신에 대한 애통함이 아니라 두려움 의 신에 대한 애도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런 조문 대열에 남쪽에서도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南北頂上회담을 앞두고 죽었으니 앞으로의 대화정책과 신뢰유지를위해 大局的인 견지에서 조문해야 한다는 것이다.조문을 주장하는일부 야당 정치인들과 6.25戰犯에게 그럴 수는 없다는 여당 의원간에 『역사에 대한 無知다』『신판 매카시즘이다』며 攻防이 뜨겁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지난 수십년간의 군사정권 시절 「민주와 진보」의 이름 아래 뒤섞여있던 비판세력,反체제세력,親北세력들이 여전히 「민주세력」으로 혼동되고 있고, 일부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여전히 그런 세력에 대한 관용을 진보적인 태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 운동권과 재야권의 한 귀퉁이에는 北쪽의 주체사상을 퍼뜨리고,父子世襲을 정당화하는 北의 「사회생명체론」을 그대로 숭상하는 세력이 있다.북한측과 팩스를 주고 받으며 북한의 전술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는 「新左翼」세력이 있다.이들의 金日成 조문론은 그 성격이 빤하다.
북한측이 갑자기 남쪽의 조문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그들의 對南분열 전략은 금세 드러난다.물론 弔問論도 다양한의견의 하나로 제기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주장하는 측은 논거를 분 명히 해야 한다.
그것을 주장하는 측은 스스로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모든 주장을 民主의 너울로 가장하는 虛僞의 시대는 지났다.미국에서도 조문론이 비판받고, 일본정부도 조문을 금지하는 판에 6.
25慘禍의 피해 당사국에서 나오는 조문론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될 것인가.정상회담 추진과 弔問불가피론을 연결시키려는 정치인들의 황당한 논리적 비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北 前科용인 안될말 우리는 북한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해왔다.金正日승계체제를 인정하는 정부의 방침을 양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 再發을 막는 실질적인 代案으로서 現實論을옹호하자는 것이지 북한의 세습 族閥체제의 허구적 논리나 역사적前科를 용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부도 마땅히 이런 점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기록을 남겨둬야 할 것이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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