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인근씨의 자녀 방학생활 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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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 □… □… □… □… □… □… □… □… □… 금주중에 초중고교가 각기 여름방학을 맞는다.방학이 가까워지면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떻게 알뜰하고 충실하게 방학을 보내도록 할것인가를 계획하느라고 바쁘다.모자라는 학과보충.운동.예능.병원진료.캠프참가등.그런데 고2,중2인 두딸과 국 민교 6년생등3명의 자녀를 둔 주부 朴仁根씨(45.서울 평창동)는 아무것도계획하지 않는것을 계획한다.몇개의 원칙하에 자유롭게 하고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하도록 하는것이 최고의 교육효과를 낸다는 것을 굳게 믿고있기 때문이다.그로 부터 새로운 방학 보내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註] …□ …□ …□ …□ …□ …□ …□ …□ …□ …□ …□ 『이번 방학에 아이들 무얼 시킬거예요?』 『설거지나 실컷 시키죠,뭐.』 동문서답 같은 내 대답에 동네 엄마는어안이 벙벙해했다.
난 방학을 마음속으로 放生이라 부른다.
사전에 放生은 「사람에게 잡힌 생물을 놓아 살려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학업이 즐거운 아이보다는 학업에 잡혀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많으니 잡혀있다고 할수 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7월이 가까워오면 매일 방학타령이다.
그들이 구하는 것은 자유다.
방학무렵이면 그간 뒤처진 공부를 해야한다며 온통 계획 세우기로 법석들이지만 나는 방학동안 아이들 할일을 계획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계획이다.아이들 스스로 할 일을 계획할 수 있겠지만 계획이 없다고해서 책망하지 않는다.
방학은「온 전한 자기」(眞我)가 살아갈수 있는 기회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각자의 생체리듬에 따라 생활할수 있는 기회는 방학뿐이니까.
그러나 가족공동체 안에서 그 질서는 지켜져야한다.예컨대 늦잠은 잘수 있지만 식사시간은 지켜야한다.고2 큰 딸과 식사를 같이 해본지 오래라는 남편의 푸념을 무마해야한다.시집갈 때까지 순수하게 같이 있을 시간이 많지도 않은데 같이 식 사하고 같이시간 보내는 즐거움을 맘껏 즐겨보아야한다.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시간,가족끼리 사랑하는 걸 열심히 연습하는 시간을 우린 좀더 가져야한다.
난 그동안 도시락 싸고 살림하느라 힘들었다고 말해주면서 그들에게 설거지를 부탁한다(요새도 휴일마다 하지만).설거지를 하면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질터이고 엄마를 도왔다는 뿌듯함도 느낄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깊은 즐거움이 담겨있다는 걸 알고 성장한 후에도 작은 일에 성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가만히 놔두면 아이들은 조금 지나 심심해 못살겠다고 한다.
난 그럴때 근처 시립도서관으로 데려간다.
책 속에서 또 다른 삶을 경험함으로써 인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학교 갈 날을 고대할만큼 심심하게 해주는 것이 유일한 내「계 획」이다.
국민학교 6학년 막내인 아들이 4학년때 학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치르겠다고 해서 1주일간 학교에 안간 적이 있다.처음2~3일간은 같이 자전거 타러 다니고 영화보러 다니고 신이 났는데 그후 아이는 풀이 죽고 모든 것을 재미없어 했다.
그 사건을 통해 할일이 없는 것이 형벌임을 깨달은 듯했다.그후 모든 생활에 열심인 아이가 되었다.
할일 없어 심심한 것이 지긋지긋하여 힘든 학교생활조차 그리워진다면 내 방학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그들이 학교생활을 더욱 열심히 할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방학중 어느날 온가족이 느닷없이 여행도 떠난다.
남들이 다가는 유명한 피서지같은 곳이 아니라 한적하고 또 자연이 그대로 간직된 어딘가로.콸콸 쏟아지듯 흐르는 시냇물도 건너고 발길이 뜸한 산길을 걷다가 진흙탕을 만나기도 하지만 뜻밖에 닥치는 모든 순간을 온 가족이 최대한 즐기며 사랑의 공동체에 살고 있음을 새삼 확인한다.
어디서든 방을 하나만 빌려서 온가족이 함께 자게 마련인데,평소「내 방」타령을 하던 세아이가 모두 한방에서 지내는 얼마쯤의불편을 오히려 즐기는 눈치다.
굳이 무엇을 배우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아도 어쩔수 없이(?)온몸으로 느끼며 배우는 기회다.
神은 우리에게 자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주셨지만 동시에 일(공부)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음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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