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마음이 따뜻해지는 진실한 교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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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위그든씨의 사탕가게
폴 빌리어드 지음,
류해욱 옮김,
문예출판사,
208쪽, 9500원

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꼬마가 벼르고 벼른 끝에 엄마 몰래 사탕가게를 찾아간다. 맘에 드는 사탕을 봉지 가득 담은 소년은 가게 주인의 손바닥에 은박지로 싼 체리 씨 여섯 개를 당당히 올려놓는다. 가게 주인은 한참을 말 없이 있다 “돈을 너무 많이 냈다”며 거스름돈을 내준다. 성장한 꼬마는 열대어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 어느 날 두 아이가 찾아와 물고기를 잔뜩 고른 후 물고기 값에 턱없이 못 미치는 돈을 내놓는다. 그는 순간 사탕가게에서의 일이 떠올라 멈칫한다. 당시 가게 주인이 얼마나 지혜롭고 너그럽게 대처했는지를 깨닫고 가슴이 먹먹해진 그는 아이들에게 거스름돈을 준다.

많은 이들이 소설로 잘못 알고 있는 ‘이해의 선물’이라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지은이가 어린 시절 겪은 실화다. 동심을 지켜주고자 했던 한 어른의 순간적 판단이 얼마나 아이에게 크나큰 선물이 됐는지, ‘대물림’된 이해심이 얼마나 진한 교감의 순간을 다시 만들어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경험은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일화가 좋은 예다. 여선생님을 너무나 사모했던 소년은 야생열매와 엉겅퀴 등을 엮은 화환을 선물한다. 그 속에 독이 든 담쟁이 잎이 섞인 줄도 모른 채. 선생님은 병원에 입원하고, 소년은 10일간 정학처분을 받는다. 문병을 간 소년은 울먹인다. “저는 정말 담쟁이 잎에 독이 있는지 몰랐어요. 선생님을 아프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어요.”

선생님은 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게 특별한 것을 주고 싶었다는 거지? 이 붕대를 풀게 되면, 너를 힘껏 안아주마. 나는 내년 봄에 결혼하는데, 아들을 낳으면 꼭 너처럼 키우고 싶어.”

교감은 꼭 부모자식이나 사제 간에만 가능한 건 아닐 터다. ‘안내를 부탁합니다’에서 전화교환원 존슨 부인과 소년은 비록 얼굴도 알지 못하는 남이지만 혈연 못지 않은 관계를 맺는다.

사실 이 책에 실린 21가지 이야기와 같은 일화는 누구나 갖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그 일화를 꺼내 먼지를 털어낸 후 음미하고 싶어질 것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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