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슈트키드의낮과밤>18.어느 구멍가게 주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미국 I주립대에서 지질학 박사학위를 받은 崔모씨(35)는 엉뚱하게도 LA에서 그로서리(식품점)를 운영한다.
남들은 해외유학을 꿈도 못꾸던 시절 파라슈트 키드로 미국에 낙하된 崔씨는 8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崔씨는 흐뭇한 기분이었다.2년전 서울을 찾았을 때 S대 교수인 부모님의 친구로부터 『학위만 취득해오면 전임강사 쯤이야 어렵지 않을 것』이란 언질을 받았던지라 崔씨는 대학교수가 되겠다 는 자신의 꿈이 어렵지 않게 실현될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러나 막상 『지난번 왔을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요즘외국 명문대 박사들이 쏟아져 들어와 취직이 힘들게 됐다』는 말을 듣곤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지방대학에서부터 연구소에 이르기까지 닥치는대로 자리를 알아봤으나 허사였다.그로부터 2년동안 崔씨의 「구직운동」은 계속됐다.
파트 타임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부인이 풀 타임으로 나선 덕택에 생활은 근근이 이어갈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그런 생활을 할수는 없었다.
『큰 아이가 국민학교 입학할 나이가 되자 더 이상 버틸 수가없었습니다.공부한 것이 아깝지만 어떻게 하겠어요.식구들을 굶길수는 없고….』 가게수입으로 이제 어느 정도 생활기반을 잡은 崔씨는 교직자리를 알아보느라 노심초사하던 때보다 차라리 「구멍가게」주인이 된 지금이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물가가 가위 살인적이라고 하는 일본으로 유학간 경우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본업」으로 뒤바뀌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서 유학하려면 「재벌 2세」가 아닌 다음에야 아르바이트를 할 수 밖에 없어요.그러다 보면 공부보다 일에 자연히 시간을 더 많이 빼앗기게 되고 학위 취득은 점점 어렵게 되죠.
』 10년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왔다는 趙모씨(37).
그는 東京의 A대학 박사과정을 다니던 7년동안 한국 술집의 「덴조」(店長:지배인)를 맡아온 경험을 살려 91년 신주쿠(新宿)에 아예 술집을 차렸다.
趙씨는 신주쿠.아카사카(赤坂)등 東京 중심가에 5백여개의 한국 클럽이 있으며,이들 업소의 대부분이 한국 유학생을 덴조로 고용하고 있어 학업을 포기하고 눌러앉는 유학생들이 상당수라고 덧붙였다.
지난 한햇동안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학술진흥재단에 신고한 유학생은 2천3백55명.이밖에 미신고자 1천여명과 이미국내에 들어와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는 유학생 1천5백여명을 합하면 5천여명이 된다.
이들은 지난해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 4천61명과 함께 4년제대학의 전임강사 이상 교직 1천7백여개를 놓고 6대1 정도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공계 출신들은 형편이 나아요.대학강사가 힘들면 연구소나 기업에 취직할 자리가 꽤 되니까요.저처럼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으로 학위를 딴 경우는 교직이 아니면 취업할 자리가 마땅치 않아 걱정입니다.』 미시간大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朴노욱씨(30)는 『학위를 받기 전이 육체적인 고통기라면학위를 받고 난 다음부터는 정신적 고문이 시작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吳榮煥.李碩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