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슈트키드의낮과밤>17.晝耕夜讀의 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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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LA한인타운의 한 한국식당 주방에서 만난 金모씨(26)는 두고두고 유학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손이 붇도록 설거지와 음식조리 보조일을 하며 한달 1천2백달러의 최저임금에 만족해야하는 생활. 세살 아래 후배 유학생의 아파트에 월 2백달러를 주고 얹혀사는 서러운 신세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그렸던 미국 대학 생활이 끝내 꿈으로 끝나고 만다는허무함,그리고 이제 돌아가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는 낭패감에 하루하루가 공허하다.
무작정 상경하듯 미국땅을 밟은 것은 91년 8월.
서울에서 H대 1년을 마치고 방위근무를 끝낸 뒤였다.
『내 전공으론 도무지 취업이 어려우리란 생각에 굳은 결심을 했어요.농사짓는 부모님을「성공해 돌아오겠다」고 설득해 간신히 4백만원을 받았죠.미국에선 학생들이 접시닦이하며 학비를 벌어 공부한다더라는 주변 얘기만 믿고 어리석은 결심을 했던겁니다.』우선 LA의 월 9백달러짜리 사설영어학원에 등록한 그는 곧 무자비한 「생계와의 전쟁」을 겪게 된다.
『월세 5백달러짜리 아파트,그저 굴러가기만 하는 8백달러짜리중고차를 끌며 열심히 공부했어요.한국인 카페에서 하루 4시간씩DJ일자리도 얻었고요.그런데 석달만에 돈이 바닥나더군요.』 DJ일로 받는 캘리포니아州 최저임금(시간당 4달러25센트)으론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게 된 그는 잠시 공부를 중단하고 한국인이운영하는 페인트상에 페인트공으로 취직했다.
『한달 1천2백~1천5백달러 정도씩 벌면서 불법체류를 막으려고 학원에 매달 2백20달러씩 주고 유학비자를 연장했죠.학원에서 알게된 후배의 아파트에 2백달러씩 주고 빌붙어 살기 시작했고….』 1년만인 재작년 겨울,일거리가 줄어 페인트공을 그만둔그는 다시 DJ를 하게된다.
가을에 한차례 응시했던 토플시험은 공부시간 절대부족으로 토플성적을 요구하는 대학들에 지원조차 할 수 없는 낮은 점수였다.
비자 연장을 위한 학원 「위장등록」도 돈이 없어 중지,불법체류자가 된채 부랑아 비슷한 처지가 돼버렸다.
『결국 지금의 식당에 취직했어요.돈없이 더 공부한다는 것도 무리고,그렇다고 귀국해야 동년배에게 한참 뒤져 할 일도 없을테고….작년에도 토플에 두번 응시해봤는데 소용없었어요.될대로 되라며 1년넘게 주저앉아 있는거죠.』 金씨 뿐만아니다.
주경야독의 막연한 꿈을 안고 유학에 덤벼든 학생들에게 좌절이란 참으로 쉽게 찾아온다.
LA H유학원장은 『우리와 달리 잦은 시험,리포트.토론.발표등으로 평소 충분한 학습.연구량이 요구되고 이를 따라가지 못할경우 가차없이 탈락시키는 외국에서 장학금이면 몰라도 돈벌며 공부란 말은 요즘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설거지부터 청소까지 유학생들의 아르바이트가 보편화된 일본. 東京都 신주쿠의 文化女大 2년생 李모양(22)은 『집에서도 안하던 설거지를 너덧시간 하다보면 파김치가 돼 공부는 뒷전』이라고 하소연한다.
『집에선 연 1백만엔의 학비 외에 월 6만엔 정도의 생활비를보내주지만 세평짜리 학생용 아파트 월세와 식비.잡비가 최소한 한달에 13만엔(약 1백만원)은 들어 일하지 않을 수 없어요.
동료중 70%는 아르바이트를 하죠.』 李양은 처음 유학온 작년부터 주로 식당에서 음식 나르기와 주방 설거지를 해왔으며 지금도 한국인 식당에서 하루 5시간씩 주 3~4회 정도 일하고 시간당 1천엔을 받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해요.일이 있는 날은 공부에 손도 못대지만 워낙 높은 물가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東京시내의 한 빠찡꼬에서 만난 明治大 공대생 朴모군(25)은 저녁부터 새벽1시까지 재떨이를 비우고 청소.잔심부름등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며 『공부하러 와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면 7~8년만에 대학을 졸업하거나 아예 눌러앉는 경우도 많다 』고 말한다.
철저한 뒷받침 없이 일단 떠나고 보는 유학의 허상은 곳곳에서나타나고 있다.
『유학은 결코 낭만이 아닙니다.』 유학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의사항이다.
〈金錫顯.吳榮煥기자〉 다음 회는「어느 구멍가게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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