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6.25 44돌 한반도안보 전망-오코노기 마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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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53년7월 휴전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재발의 위험이 가장 높았던때는 67~69년께다.당시 북한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62년 9월 노동당 제4차대회에서「남조선혁명」은「反帝민족해방혁명」의 일환으로 규정됐다.金日成수상(당시)은「3大혁명역량론」을 주창,「남조선 혁명역량」의 육성에 주력했다.그리고 이것이 실패하자 67년 후반기부터 수차례에 걸쳐 무장유격 대를 파견,한국의 산악지대에 해방구를 설치하려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당시 북한의 위협은 단순했다.군사적 도발에대항할 수 있는 억지력만 한국이 구축하면 충분했던 것이다.朴正熙대통령은「자주국방」의 기치아래 향토예비군을 조직하는 한편 방위산업 육성에 나섰다.維新이란 이름아래 한국서도 국방.경제병진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냉전 종결과 함께 이번에는 종전과 완전히 다른 형태로 한반도에 전쟁재발의 위험성이 대두되고 있다.북한이 이번에 필요로 하는 것은 그러나「남조선 혁명」이 아니라 체제의「살아남기」다.베를린장벽 붕괴 이후의 국제적 고립화,십여년간 지속 된 경제난 심화및 남북 경제격차의 확대등에 직면하면서 북한 지도부는 체제존속에 불안을 느껴왔다.핵무기 개발의 목적은「살아남기」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살아남기가 완전히 보장될때까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최악의 경우 한국과의 동반자살을 기도할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무엇을「살아남기」의 조건으로 삼고있는 것일까.
첫째는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다.다음은 北-美평화협정 체결및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불사용선언일 것이다.
북한 원자로를 경수로로 전환하는데 대한 원조도 필요하다.더군다나 북한은 北-美교섭에서 일괄타결을 요구하고 있다.이같은 조건들이 일괄적으로 충족될 때까지 북한은 전면적인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北-美간 일괄타결론의 숨겨진 의도는 한국「따돌리기」에 있다.
金日成은 외교적 충격요법으로 金泳三대통령을 平壤에 불러들여 연방제통일,주한미군 철수,남북경협등을 요구할 것이다.며칠전 발표된 남북정상회담이 정말로 실현돼 대등하고 진실한 토론이 보장된다면 이는 기본방침의 변화를 의미하는 기쁜 일일 것이다.그러나필자는 여전히 회의적인 느낌이다.북한의 교묘한 전략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놀랄만한 것은 북한은「살아남기」의조건으로 제시한 것들을 전부 동시 에 이루려 한다는 점이다.다음에 재개될 北-美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주장의 일부를 수용,단계적.부분적 타결을 시도하려 해도 북한은 쉽게 그에 응하지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번 위기가 현명하게 대처됐던 것일까.지미 카터 前美대통령의 平壤방문에 따라 위기가 일단 누그러진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그러나 北-美고위급회담 재개는 북한이 강하게 요구해왔던 것이며,위기회피와 함께 경제제재도 할 수 없 게 됐다.
더구나 카터의 平壤방문은 미국의 제재의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북한지도부는 빌 클린턴대통령이 먼저 전투의지를 잃고,「치킨게임」(차량을 마주 달리게 해 먼저 피하는 쪽이 지는 게임)에서 투항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2차세계대전에 서 살아남은「아시아의 늙은 너구리」(金日成)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클린턴)를 농락한 것이다.
여기서 클린턴대통령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그러나 그가 6월10일의 기자회견에서「한국에 주둔중인 미군 3만7천명의 안전도 매우 중요하다』고 밝힌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왜냐하면 그의 머리속에서 이미 주한미군은 전쟁억지력으로서 존재하 는 것이 아니라 위기 발생시의「인질」로서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그것은 카터시대의 주한미군 철수론과 흡사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냉전종결후의 한반도에는 전쟁도,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또 위기의 근원이 북한의「살아남기」인 만큼 핵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본질적인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국이 냉전 때와 같은 파트너로서 계속 존재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한국인 자신의 자주국방 의지와 지역안보체제의 중요성이 재인식돼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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