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농성장 무질서 너무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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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해도 너무합니다.이곳에서 벌어진 많은 시위와 농성을 봐왔지만 이처럼 무질서하진 않았어요.』 明洞성당경비원 崔모씨(39)에게 24일은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이틀째 이곳에서 농성중인 지하철노조원들이 최소한의 질서도 지키지 않는 막무가내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전엔 최소한 깔고앉았던 자리는 치우는 질서의식이 있었죠.
그런데 이게 뭡니까.저 쓰레기들을 좀 보세요.』 崔씨가 가리킨성당 입구엔 농성대가 내버린 스티로풀 깔판과 마분지.신문지에다먹고버린 김밥포장.빈캔까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농성대는 땡볕을 피한다며 출입금지구역인 녹지대에누워 낮잠을 잤고 일부는 심지어 그늘에서 화투놀이에 열중하기도했다. 『이곳이 어디 유원지입니까,아무데나 마구 누워 신도들의통행을 가로막고….농성한다며 고스톱은 또 웬 말입니까.』 崔씨는 종일「쓰레기를 치워달라」「나무에 기대지말라」며 농성대와 승강이를 벌이느라 목이 쉴대로 쉬어버렸다.
이날 오후 명동성당을 찾은 신자와 방문객들은 입구부터 난장판인 아스팔트길을 오가며 눈살을 찌푸렸고 몇몇은 崔씨를 찾아와『왜 보고만 있느냐』고 볼멘 소리로 항의했다.『易地思之란 말도 모릅니까.자기권리를 주장하려면 남의 입장도 존중해 야죠.농성중일땐 성당을 찾는 신도들에게 이런 불편을 끼쳐도 되는 겁니까.
』 그러나 노조원들중 질서유지를 호소하는 崔씨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나와는 상관없다는듯 멀끔히 바라보거나 외면하는 모습이었다.농성대의 무질서를 항의하는 한 신자에게 한 농성 지도부는『걱정마십시오.농성이 끝나면 다 치울 겁니다』라며 애써 변명했지만『대낮에 자려면 집에서 자고,화투치려면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가시돋힌 지적에는 끝내 얼굴을 붉히며 입을다물고 말았다.
〈柳權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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