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대학·성당·교회로…/언제까지 「농성성소」여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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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노조원·학생들 바리케이트 치고 화염병 제조
대학과 성당은 시위대의 안전한 농성장인가.언제까지 공권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성소여야 하는가.
서울지하철 노조원들이 24일 파업을 결의한뒤 경찰의 강제해산을 피하기위해 명동성당과 고려대·영등포 성문밖교회·기독교회관등에 분산농성을 시작함에 따라 이들 시설이 이런 목적에 계속 이용되어도 좋은지 비판 여론이 높다.그중 고려대로 몰려간 근로자들은 서총련 대학생들과 합세,철야농성을 하다 경희대로 옮겨 농성중이다.
24일 오후5시40분 고려대. 전날밤 이곳에 몰려와 밤샘농성을 한 지하철조합원 1천5백여명은 『경찰이 진입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오를 정비한뒤 숲이 짙고 도피로가 많아 「경찰과 싸우기 편한 장소」인 경희대로의 이동을 준비했다 .
경찰진입에 대비,쇠파이프등을 들고 밤새 정문등을 경계했던 서총련 선봉대 70여명이 앞장서 경호하는 가운데 조합원들은 홍릉로터리를 지나 경희대까지 가두행진을 했다.
화염병 30∼40박스를 가득실은 봉고차가 이들의 행렬을 뒤따랐다.
오후7시30분.경희대 정문∼농성장인 노천극장 사이엔 경찰진입에 대비한 3중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플라스틱 의자,쓰다남은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엔 경찰 진입때 불을 지르기 위해 헝겊이 덧씌워졌다.총학생회 사무실에선 화염병이 계속 만들어졌고 여학생들은 법대옆 공터에서 벽돌을 깨 「실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쟁 직전의 바로 그 모습이었다.
학교 출입자는 쇠파이프로 무장한 학생들에 의해 신분증 제시를요구받았고 무전기를 든「사수대」들은 밤새 순찰을 돌며 교내경비상황을 점검했다.『우리는 파업노동자들을 보호할 거고 경찰이 이들을 연행하려면 그만큼 피를 봐야 할 겁니다.』 사수대의 한 학생은 자신들의「사명감」을 얘기했다.
경희대뿐만이 아니라 파업근로자들은 임금인상 요구파업이 민주화투쟁과 무슨 관계라도 있다는듯 명동성당·야당당사·기독교회관등 80년대 군부독재시절의「성소들」을 점거하고 있다.
『이제는 시위에 대한 생각도,방법도 다 달라져야 합니다.언제까지 80년대 식으로 살아갈 겁니까.』 6·10항쟁 당시 그 자신도 명동성당에서 연일 시위를 했었다는 서모씨(38·회사원)는 성당 곳곳에 삼삼오오 흩어져 있는 파업노동자들을 못마땅한 눈길로 쳐다보며 혀를 찼다.〈유권하·신봉·양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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