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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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써니는 흰 운동화에 초록색 양말을 신고 있었다.나는 써니의 발에 시선을 박은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써니는 무릎 아래까지내려오는 헐렁한 긴치마를 입고 있었다.
『안먹었다는 거니…배 고프지 않다는 거니….』 써니가 그러길래 내가 또 고개를 천천히 위아래로 끄떡거렸더니 그애가 깔깔 웃었다. 『멍달수,그러면 내가 어떻게 알아.먹었다는 건지 배 고프다는 건지….』 나는 써니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알아맞춰보라는 거지.이 변절자야.』 그렇게 말하면서 웃음이 났고 어느 정도 기분도 좋아졌다.
써니는 흰 티를 받쳐입고 체크무늬 남방의 단추를 채우지 않은차림에 머리는 뒤로 해서 하나로 묶은 모습이었다.써니가 웃는 얼굴은 정말이지 죽여줬다.
『궁상떨지 말고 일어나.내가 뭐 사줄게.』 둘이서 나란히 큰길 쪽으로 타박타박 걷다가 내가 물었다.
『집에 언제 온 거야?』 『학교 끝나자마자.한참 됐어.오늘로근신기간이 끝났거든.』 『인제 안 피는거야?가끔이라도 창밖을 내다보면 안되니.』 『울 엄마가 요즘에 나한테 너무 잘해주거든.엄말 기쁘게 해주고 싶어.』 『집에 계셔?』 『아니.나갔어.
엄마하고 아래층에서 이거저거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나가서 내 방으로 올라갔던 거야.엄마하고 아주 친해졌어.요샌.』 써니는 치마주머니에 두손을 박고 걸었고,나는 한쪽 어깨에 가방을 둘러멘모양이었다.누가 봐도 써니는 고등학생처럼 안 볼 거였다.나는 책가방을 어디 쓰레기통같은 데에 확 처넣어버리고 싶었다.
『너희 엄말 만났었어.너희 엄만 니가…날 안 만나기로 했다고그랬어.대학에 들어갈 때까진.』 나는 심각하게 말했는데 써니는소리없이 웃기만 했다.
『말해봐.정말인지 아닌지….』 『이렇게 만나고 있잖아.그리고널 보니까 좋아서 웃고 있잖아…울 엄만 달수 니가 나쁜 애같지는 않다고 그랬어…하여간 난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구…여기 맛있는데 어때.』 간판에「망치 피자」라고 써 있었다.나는 제목이 웃겨서 좋다고 그랬다.
우리는 피자집 나무의자에 마주 앉아서 피자 큰 거 하나와 맥주 작은 거 두잔을 시켰다.
주문받는 사람이 가자마자 써니가 빨리 말했다.
『너 이런 거 아니.수입하는 닭 있잖아,방부제를 너무나 많이먹여서 말이야,그걸 만지고 나면 꼭 손을 씻어야 한대.그리구 미국에서는 소를 키우면서 항생제를 마흔 가지나 먹인다는 거야.
병에 걸리지 말라고.』 『넌 그럼 그런 거 하나도 안먹어?』 『아니 나두 다 먹어.산성 비도 맞는데 뭐.』 『그런데 왜….
』 『아 내 말은…어쩔 수 없다 이거지.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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