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시민 「사재기」에 눈살/“북한도발 석달전 탐지 가능한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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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거망동은 혼란만 초래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긴장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안보불감중」이란 지적이 나올만큼 평상을 유지하던 시민들이 금주들어 갑작스런 「안보불안 과민증」으로 돌아서는 양상을 보여 우려와 함께 『냉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사찰 거부와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위협 등 잇따른 강경대응이 보도된 13일이후 서울 등 대도시지역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일부에서지만 라면·쌀·부탄가스 등 비상용품 「사재기현상」이 나타나고 직장과 학교·상가 등에서는 『정말 전쟁이 나는거냐』 『전쟁이 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거냐』가 화제가 돼 불안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 경우 적어도 3개월전에는 사전탐지가 가능하고 사재기는 유사시 도움이 안될뿐 아니라 뜻밖의 혼란만 빚을 수 있다』며 『이는 곧 북한의 심리전에 말려드는 상황일수도 있는 만큼 국민들이 냉정을 찾고 차분히 정부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재기=금주초부터 대도시 아파트를 중심으로 비상용품들에 대한 일종의 투매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그랜드백화점의 경우 평소 1백60개쯤 팔리던 3만2천원짜리 20㎏부대 쌀이 재고분 6백60개까지 모두 팔려 나갔다. 또 라면·밀가루·통조림·부탄가스·상비약 등 생필품 등을 사려는 시민들이 지하 1층 수퍼매장에서 계단을 지나 1층 현관문앞까지 수십m씩 늘어설 정도였고 목동·상계동 등 대규모 아파트주변 백화점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신촌 농협상가의 경우도 평소 3백여부대 정도 나가던 10㎏들이 쌀이 1천여부대 정도 나갔고 라면판매도 3배이상 늘어나는 등 거의 모든 백화점·슈퍼·농협·구멍가게 등에서 부탄가스·양초·성냥·건전지·나무젓가락·세탁비누 등 비상생필품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주부들은 또 현금 대신 신용카드로 대금을 치러 계산대마다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도 있었다.
(주)농심 영업부는 『북한 핵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라면의 출하량은 변동이 없었으나 이번주부터 달라져 13일에는 전체 주문량이 평소보다 20%이상 늘었고 14일부터는 30%이상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화폐발행액도 지난주말을 고비로 조금씩 늘어나 10일 4백93억원,11일 4백28억원이 순발행됐고 13일에는 현금수요가 적은 주초임에도 불구하고 5백74억원이 발행됐다.
◇불안확산=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국제문화여행사 오원기대리(31)는 『이번주들어 평소보다 30% 이상 해외여행 비자신청이 늘었으며 그 대부분은 여행목적이 없어 비상시 해외도피용으로 미리 발급받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직장·학교 등에서도 「전쟁」 가능성이 주요 화제가 되고 있다.
(주)우방 영업부 김신조대리(31)는 『점심시간·퇴근후 술자리 등 모이기만 하면 북한 핵문제와 전쟁 가능성이 주요화제』라며 대부분 전쟁이 안일어 날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재기에 열중하는 일부국민들의 모습때문에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중학교 1학년 담임 김모교사(35·여)는 『아이들이 불안해해 수업시간에 안심시키는 얘기를 해주고 있다』며 『저학년일수록 공포감을 더 갖는다』고 말했다.
◇대처요령=국방전문가들은 『남·북간의 대치상태가 이어지고 전쟁발발 가능성이 상존하는 만큼 구급약·건전지 라디오·손전 등과 양초·부탄가스 등 평소 비상용품 비축은 필요하다』며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에 무조건 많이 사둔다거나 해외로 출국해 버리겠다는 사고방식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말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모든 전기·수도·가스가 공급중단 또는 제한송전되며 학교 등 특정 대피소에 집단 소개되는 것이 통상의 원칙이기 때문에 무분별한 사재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말이다.<신성식·김동호·표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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