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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데이

사르코지의 대이란 강경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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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란이 핵폭탄을 보유한다면 우리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 사태는 전쟁을 의미한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달 16일 라디오 방송과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란 핵 프로그램의 가동 중지에 실패하면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든지, 이란을 폭격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 지도자들의 잇따른 대이란 강경 발언을 두고 전문가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사르코지 정부가 프랑스 5공화국의 트레이드 마크인 ‘전략적 독자 노선’에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드골 대통령에 이어 미테랑·시라크 대통령이 지켜온 외교 정책이 급선회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들은 미국과 탄탄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국의 독자적인 입장을 강조해 왔다. 냉전 기간에도 프랑스의 입장은 특별했다. 한국전쟁, 베를린 장벽 건설, 쿠바 미사일과 유럽 미사일 위기 등으로 동서 갈등이 고조됐을 때는 강하게 워싱턴 편을 들었다. 반면 서구 진영 내에서는 미국의 외교 방침에 노골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인 적도 많았다. 국제 사회에서 프랑스는 서방 국가이면서도 독자적인, 그래서 매력적인 나라였다.

냉전이 끝난 뒤 시라크 대통령 재임 시절, 프랑스는 미국 일방주의의 도전에 맞서 상호 다원주의와 국제법·국제기구를 지키는 보루였다. 이라크 전쟁 때도 프랑스는 이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미국 정부가 “우리 편에 서지 않으면 적”이라고 외쳤지만 프랑스는 이라크전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르코지는 부시보다 친미적이며, 친이스라엘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그의 친미 행보가 시라크와의 차별화를 위한 전술인지, 아니면 실제로 외교 정책의 급진적인 변화를 암시하는 것인지를 놓고 말이 많다. 그러나 한 국가가 외교 정책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외교 정책이란 역사와 지정학적인 배경, 위상 등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핵 개발에 반대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폭격’이라는 극단적인 단어까지 입에 올리며 한발 더 나아갔다. 그러나 사르코지와 쿠슈네르 장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언뜻 들으면 이들이 군사작전에 찬성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황 자체를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이란 상대의 전쟁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지역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이라크 전쟁보다 더 큰 참화가 빚어질 것이 명백해 보인다. 이란을 공격해도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는 핵 시설을 모두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란의 반격을 고려하면 제한적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곤경에 빠질 것이다. 그는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에 반대해 적으로 몰리는 상황을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워싱턴의 군사작전을 지지, 결과적으로 독자 노선을 걸어온 프랑스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부시와 그가 일으키는 새 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 국민이 사르코지에게 등을 돌릴 우려도 있다. 따라서 그에게 새 전쟁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될 수 있다.

사르코지는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이 자신이 추구하는 전략과 병행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전략은 이슬람과 서구 문명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선언은 테헤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전술에 불과하다. 경제적 제재와 더불어 이러한 압력이 외교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전략문제연구소장

정리=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