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빠'는 게임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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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에 허우적대는 호스트들

호빠에서 일하는 속칭 ‘호스트(남자종업원)’들 사이에서 수 천 만원의 판돈이 오가는 ‘거액상습도박’이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도박판에 발을 담근 호스트들은 대부분 적게는 수 백 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 원의 빚까지 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호스트들이 이 ‘도박빚’을 감당하지 못해 절도행각을 저지르거나 빛 독촉에 쫓기다 자살까지 하는 등 그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또한 호스트들의 도박판에 끼어들어 막대한 돈을 챙겨가는 ‘전문 사기 도박꾼’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도박꾼들은 도박판을 노리고 아예 호빠에 위장취업해 도박판을 조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부터 돈다발이 수북이 쌓여있는 그들의 위험한 게임 속으로 들어가 보자.

호스트바에서 일해오던 J씨(27)는 수 개월 전 2억 원의 빚을 갚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J씨가 빚을 떠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연히 빠져들게 된 도박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영업시간 외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장난삼아 벌인 ‘판’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지게 됐다. 도박의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그는 급기야 영업시간에도 틈을 내 도박을 할 정도로 도박의 노예가 돼 갔다. 얼마 되지 않던 판돈이 갑자기 커지게 된 것은 다른 업소에서 일한다는 ‘호스트’들이 끼어들면서부터였다.

J씨는 이들과 도박을 시작한 초반에는 돈을 따는 것처럼 느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호스트들은 판돈을 점점 키우기 시작했고 J씨도 여기에 휩쓸려 덩달아 큰돈을 내걸었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J씨의 안색은 점점 창백해져갔다. 판돈으로 올려놓았던 돈을 모조리 잃었기 때문.

그러나 돈을 잃은 J씨는 본전 생각에 여기서 도박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잃은 돈을 되찾아야 한다는 무모한 욕심을 앞세워 돈을 계속 끌어왔고 급기야 동거녀의 돈까지 끌어다 썼으나 모조리 탕진하고 말았다. 이후 그에는 ‘2억원의 빚’이라는 처절한 악몽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거절할 수 없는 ‘유혹’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처럼 도박의 유혹에 빠져들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는 호스트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강남의 R업소에서 근무하는 B씨는 “업소에서 일하는 아이들(호스트) 20여명 가운데 도박 빚을 지지 않은 이는 불과 2-3명에 불과하다”며 “이는 우리 업소뿐 아니라 다른 업소도 사정은 거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특히 영업을 하지 않는 낮 시간에 별다른 여기활동을 즐기지 않는 호스트들에게 ‘도박’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라는 것. 호스트들은 보통 자정을 전후해 영업을 시작해 새벽에 영업을 마친다. 손님이 많은 날은 오전까지도 영업이 이어진다.

영업이 끝나고 잠을 자면 보통 오후 5시에 일어난다. 이때부터 자정까지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이들이 업소에서 도박판을 벌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 문제는 도박판에서 오고 가는 판돈이 단순히 재미를 위해 하는 것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거액이라는 점이다. 알려진 바로는 호스트들의 수입은 대게 일천만원 전후.

그러나 오고가는 판돈은 많게는 수 천 만원이다. 수입과 판돈의 함수관계를 따져보면 빚을 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사리 끊을 수 없다는 도박의 특성 때문에 돈을 따는 사람이든 잃는 사람이든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한고 결국 빚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간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전언이다.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돈을 끌어다가 도박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업소 손님들의 돈도 끌어다 도박에 사용한다. 업소에서는 오히려 돈을 빌려주며 도박을 부추기기도 한다. J씨와 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업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면 그야말로 ‘노예’신세가 되는 셈이다.

전문사기꾼도 기승

한편 최근에는 이러한 호스트들의 도박판을 노리는 ‘전문도박사기꾼’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도박판을 벌이는 호스트바마다 찾아다니며 처음에는 돈을 잃어주는 척하고 판에 끼어들어 시간이 지나면 판돈을 키워 돈을 쓸어간다. 이들 중에는 나이가 20대 초반 밖에 되지 않는 도박꾼도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사기도박단은 조직적으로 짜고 판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돈을 따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인 것은 물론이고 사기도박임을 발견해 내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 같은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일부 ‘호빠’에서는 아예 외부인들은 판에 끼어들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 돈을 잃게 되는 호스트들은 주변 사람을 부추겨 도박에 참여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후배 호스트들에게 강요하기도 한다는 것. 실제로 신당동의 한 ‘호빠’에서 일하는 호스트는 도박을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하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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