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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게이트' 전대월씨 사할린서 3조원대 유전 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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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전인 17일부터 20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러시아 사할린에 있는 두개 유전을 둘러봤다. 이 유전의 소유주인 케씨오 에너지의 초청에 의한 것이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는 2005년 오일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됐다 무죄 판결을 받은 전대월씨다. [편집자주]


전 대표가 보여준 곳은 사할린 북부의 유즈노-다긴스키와 남부의 라마논스키 유전이었다. 소개 비중은 유즈노-다긴스키에 더 실렸다. 탐사 광구인 라마논스키와 달리 생산 광구이기 때문이다.

전 대표씨는 자신의 유전 사업이 ‘엉터리’가 아니라는 증거로 다긴스키를 꼽고 있다. 언론에 공개해 ‘봐라 석유가 진짜 나오지 않느냐’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다긴스키 유전은 5월 15일 유즈노-사할린스크 주정부 청사내 경매장에서 전 대표의 러시아 회사인 톰 가스 네프찌에 낙찰됐다.

전대월씨는 사할린의 유즈노 다긴스키 유전에서 20년간 잠자고 있던 석유 생산 설비를 잠깐 열어 생산 시연을 했다. 석유와 가스가 24기압의 압력으로 분출돼 나오고 있다.

현장은 멀었고 일정은 좀 과격했다. 17일 오후 유즈노 사할린스크 공항에 내려 6개사 7명의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오후 8시20분 기차를 탔다. 기차가 덜컹이며 14시간 여정의 바퀴를 서서히 굴렸다. 차창 밖, 원시의 수목은 어둠에 몸을 숨겼다. 밤을 패서 달리는 기차에서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기차는 기자가 러시아 특파원을 하던 당시인 1994~97년과 거의 비슷했다. 덜컹거리는 차량도 그랬고, 4명이 들어가는 침대칸 쿠페의 모습도, 네개의 2층 침대도 변함 없었다. 뚱뚱하고 건장한 아줌마 차장도 여전했다. 보드카를 마시지 말라는 차량 경비원의 간섭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18일 오전 10시20분쯤 기차가 1차 목적지인 노글리키시에 도착했다. 겨우 600㎞를 14시간동안 달려온 것이다. 구질한 열차에서 여독이 풀릴 리 없었다.

다행히 춥지 않았다. 광활한 사할린의 숲을 거친 가을의 상쾌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현장은 스산했다. 기자들과 톰가스네프찌 직원들을 태운 버스는 3차선 폭의 비포장 도로를 한시간 가량 빠르게 달렸다. 이윽고 큰 길에서 벗어나 바퀴 자국 진한 좁은 숲길을 20여분 정도 간뒤, 모두 하차해 덤불을 헤치고 가자 이윽고 전 대표가 내심 자랑하는 2개의 ‘시설’이 나타났다.

‘시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정체가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높이 3m 정도의 녹슨 파이프 더미 같았다. 실제로는 석유를 지하에서 뽑아내 수송 파이프로 연결하는 장치다. 구 소련때 석유를 퍼갔다가 밸브를 닫아 건지 20년이 넘어 녹이 슬었다. 회사는 그 중 하나의 시설에서 원유 생산 시연을 했다.

회사 관계자가 압력 밸브를 조절하자 매캐한 가스 냄새가 퍼졌고 곧 원유가 분출됐다. 톰가스네프찌의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박사가 “1200m 지하에서 올라온 원유”라고 했다. 석유가 있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압력계를 보니 24기압. 보통이라면 12기압 정도가 돼야 하지만 유달리 압력이 세다. 닫힌 밸브를 열면 당장 석유가 뿜어져 나올 만큼 짱짱한 유전이란 의미다.

시설은 60mm 굵기의 파이프로 어딘가 연결돼 있다. 과거 이 곳에서 퍼 올렸던 원유가 이 파이프를 거쳐 인근 저장탱크로 옮겨졌다고 한다.

석유전쟁이 벌어지는 사할린에서 어쨌든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석유 생산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시연은 짧았다. 오래 하면 많은 석유가 흘러나와 환경을 오염시켜 처벌받는다고 했다.

현장엔 여러 관계자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에게 ”시설 밑에 석유가 진짜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건 같이 갔던 다른 기자들이 물음을 대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구소련시절 다 파먹고 껍데기만 남은 유전을 산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일부 기자는 ‘땅 속에 기름통을 숨겨놓고 쇼할 수도 있다’는 날선 농담으로 의심을 감췄다. 이 관계자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보더니 ‘어떻게 더 증명하느냐’고 했다.

기자들이 유즈노 다긴스키 유전에 있는 석유 생산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의심! 전대월 대표의 유전에는 의심이 따라다닌다. 사람들이 전 대표의 ‘과거’ 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를 관찰하기 때문이다.유즈노 다긴스키 유전도 예외가 아니다. 압축하면 세가지다. 첫째 러시아 정부의 공시를 어떻게 믿느냐. 둘째 그 땅에 진짜 석유가 있느냐. 셋째 어떻게 이 유전을 샀느냐다.

첫째 의문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다. 러시아 사할린 주정부가 5월15일 입찰 때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유즈노-다긴스키 유전의 매장량은 800만t이다. 그것도 추정이 아니라 확인된 C1-카테고리 매장량이다.

800만톤이면 약5900만 배럴이고, 배럴당 가격을 60달러로 잡을 때 약 3조원의 가치를 갖는다. 거기다 여기에 더 많은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도 높단다.

그런데 과연 이 숫자를 믿을 수 있을까. 이 숫자를 이해하려면 설명이 필요하다. 러시아 방식대로 석유와 관련된 모든 조사를 순서대로 늘어놨을 때, 뚫기 전까지의 조사를 통한 추정치는 D2, D1, C3-카테고리 등으로 분류된다. 정확도는 C3-D1-D2 순으로 C3가 가장 높다

여기까지는 땅속이 아닌 땅 위에서 한 조사다. 지질 조사,탄성파 조사, 중력파 조사 등이 다 포함된다. 구 소련시절에 사할린에선 다양한 조사가 있었다. 1950년대 것부터 시작해 조사 내용은 차곡 차곡 축적돼 있다.

C3 카테고리가 확실하다고 결정되면 뚫어서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면 어느 지층에 어느만큼 있다는 게 확실해진다. 그런데 기업이 확인했다고 해서 확정되는 게 아니다. 러시아 연방정부의 확인을 거쳐야한다. 정부 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도장을 꽝 받고 나서야 비로소 C1,C2 카테고리가 된다. 유즈노 다긴스키 유전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그러니 반증을 제시할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유즈노 다긴스키의 C1-카테고리 매장량을 부인하는 것은 일단 부질없는 일이다.혹자는 “그래도 믿을 수 없다. 위원회가 돈을 먹고 짰을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그냥 해보는 궁시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의심을 어떻게 다 없앨 수 있나. 미국도 아닌 러시아의 공시인데 어떻게 의심을 싹 없앨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전 대표는 “제3의 기관에 조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11월에 나온단다. 제3의 기관은 미국의 3대 석유 관련 조사 업체중 하나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사람들은 ‘제3의 검증기관’이라면 신뢰한다. 그러나 검증 기관이 참고하는 자료는 모두 해당 회사에서 제공한다. 다기스탄의 경우 자료 제공 주체는 ‘톰가스네프찌’다. 그렇다면 조사 결과가 달리 나올 가능성은 낮다.

혹 제3의 검증기관이 별도로 조사할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 비용이 문제다. 지질조사,중력조사,탄성파 조사도 문제지만 구멍을 뚫는 조사는 비용이 꽤 들어간다. 많게는 시추공당 50억달러까지 들어갈 수 있다. 어떤 검증기관이 자기 돈으로 구멍을 뚫어 생산광구를 재검사를 하려들까.

결론은 러시아 정부의 공시를 믿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대안은 딱히 없다는 것이다.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러시아 정부도 사기’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자신이 있다면 해도 되지만 분명한 증거를 갖춰서 할 일이다.

다음은 이 땅이 진짜로 석유가 나올 그런 땅이냐는 물음이다. 부동산으로 치면 전망있는 땅이냐는 것이다. 주변을 살피는 게 한 방법이다. 말도 안되는 땅에 ‘시설’하나 달랑 꽂힌 게 아닐까.

그건 아닌 듯했다. 우선 가는 길 주변에 석유의 흔적이 산재해 있다. 도로 가까운 곳에서 석유를 퍼올리기 위해 펌프질하는 유전이 눈에 자주 들어왔다. 모두 러시아의 최대 석유회사인 로스네프찌 소유다.

유즈노 다긴스키 유전에서 7~8㎞ 떨어진 곳에는 로스네프찌 석유 집하장이 있다. ‘다긴스키 우글 뽀드가토브키’라는 곳이다. 가까이 가보니 땅에서 분출되는 천연가스를 태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 지역 전체가 석유 밭이라는 점이다. 유즈노 다긴스키를 포함해서 이 지역 전체에 30개의 유전이 사방에 널려 있다. 그러니까 다긴스키 유전내 ‘시설’은 넓은 석유밭 가운데 자리잡은 764㎢ 크기의 땅에 뚫린 두개의 구멍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렇게 석유가 매장돼 있으니까 이 지역과 가까운 해역에서 벌이는 사할린-II 프로젝트에 셸이나 미쓰이ㆍ미쓰비시 같은 회사들이 기를 쓰고 들어와 원유 지분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었다.

석유가 많은 이유는 지층 때문이다. 이 지역 지표 아래에는 다긴이라 불리는 지층이 있다. 석유를 스폰지처럼 머금고 있는 층이다. 현재 기술력의 조사로는 낮게는 600~700m, 깊게는 2000m 밑까지 분포돼 있다. 단층 활동도 활발해서 배사구조도 잘 발달돼 있다.

석유가 갇혀 있는 다긴층내 배사구조에 ‘빨대(시추공)’를 꼽으면 압력에 따라 콸콸 나오기도 하고, 낮으면 펌프질을 해서 퍼올린다.

잠깐 시간을 내서 노글리키시에서 12㎞떨어진 카탕글리라는 곳을 가 봤다. 유즈노 다긴스키에선 한 50㎞떨어진 곳이다. 말 그대로 유전(油田), 석유밭이었다. 여기 저기 20~30m 씩 떨어져 펌프질이 요란했다.

나머지 문제, ‘그렇게 좋으면 왜 러시아가 팔려고 내놨느냐’는 물음. 진짜 취재가 어려운 영역이다. 전 대표는 ‘여러 사람이 도왔다’고만 할 뿐 말을 아꼈다. 전 대표의 러시아 파트너인 고려인 최경덕씨의 역할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수산물 사업도 하고, 건설사업도 하는데 사할린에서 발이 넓은 것은 물론,모스크바에까지 깊은 인맥을 맺고 있는 마당발이란 평을 받는다. 그게 전 대표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어쨌든 나는 경매 현장에서 그 광구가 전대월씨의 러시아 회사인 톰 가스 네프찌에 낙찰 된 것을 봤다. 합법 거래라는 게 중요한 출발점이 아닌가. 어찌 보면 주변에 널린 게 유정인데 그 가운데 두 개쯤 샀다는 게 러시아에서 무슨 큰 일이겠는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을 해도 여전히 남는 시비가 있다. 인프라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리 밭이 좋으면 뭐하나.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면 말짱 헛 일 아니겠나.

그런 의심을 여우가 더 키워줬다. 생산 시연 중에 덤불 속에서 여우가 불쑥 나타났다. 토실 토실 살 찐 여우는 사람을 처음 보는지 멀뚱멀뚱 한참 쳐다보며 달아날 생각도 않는다. 그만큼 인적이 드문 곳이란 얘기다. 이는 시비가 걸릴 수 있는 요소다. 이렇게 멀리, 접근도 하기 어려운 외딴 곳에 덩그라니 서 있는 설비를 놓고 무슨 대박타령인가.

거기다 도로 수준도 문제다. 기차로 14시간 굼벵이처럼 기어간 고리를 올 때는 짚차로 왔다. 전체 600㎞가운데 500㎞가 비포장 도로다. 차가 어찌나 흔들리는지 한잠도 못 잤다.

그러나 러시아 관계자는 “이곳은 파이프만 박아두면 저절로 생산된다” 며 “가끔 와서 설비를 유지해주면 그뿐”이라고 했다. 뭣하러 환경까지 파괴해가며 아스팔트 진입로를 널찍이 만드냐는 얘기다.

내려올 때 고달팠다고 하지만 그 비포장 길도 엄연한 산업도로였다. 3차선 폭의 길 양편으론 제한속도가 70㎞임을 알리는 표지판도 붙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탱크로리와 각종 수송 트럭이 10시간 내내 질주를 하고 있었다. 남들 멀쩡히 이용하는 도로를 놓고 길이 나쁘다는 타령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전씨는 “로즈네프티의 송유관 사용 협의가 끝나는 대로 생산이 가능하다. 빠르면 두개 설비에서 11월 원유를 생산할 계획”이라며 “상업 생산을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개당 20여억원을 들여 8개 구멍을 더 뚫겠다”고 자신했다.

다음날 라마논스카야 탐사광구를 가야 했지만 일이 있어 못갔다. 거긴 4월에 이미 가본 곳이다. 이 유전은 유즈노-사할린스크 북쪽 250㎞에 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에서는 2억1000만배럴을 가채 매장량으로 보고 있다. 미래 얘기긴 하지만 배럴당 60달러로 치면 시가가 11조원이다.

여기도 유즈노 다긴스키 같은 시비가 그대로 재연될 수 있다. 매장량에 대한 시비도 있지만 역시 인프라에 대한 시비가 날카롭다. 비포장 도로가 잘 돼 있지만 현장까지 차로 10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 생산 가능성이 있는 유정까지는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고, 겨울엔 장갑차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비판의 골자다.

전 대표는 “길은 개발하면 될 일”이라며 “자본을 유치해 유정을 뚫고 원유 저장소도 건설, 2009년 이후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전 대표는 ‘착실히 전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의심의 시각이 여전히 한편에 있다. 유전개발사업엔 시간과 자금이 많이 들어가고, 특히 파봐야 알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쓸데 없는 의심’이라고 내칠 수만은 없다.

내년이 분수령이다. 전씨의 계획대로 내년에 유즈노 다긴스키 유전에서 상업 생산을 개시하고, 라마논스키 유전에선 내년 7~8월부터 생산해 수출하겠다는 구상이 실현된다면 전씨와 전씨에 대한 투자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이 될 것이다. 다만 그 때까지는 그려지는 그림을 지켜 볼 일이다.

노글리키,유즈노사할린스크=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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