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대, 반미 이란 대통령 초청 특강 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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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디네자드 대통령(左), 볼링거 총장(右)

대표적인 반미 지도자로 꼽히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미국의 명문 컬럼비아대의 초청을 받아 24일(현지시간) 두 시간가량 강단에 섰다.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 방문 도중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다음날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낙인 찍힌 이란 대통령에게 강연 기회를 준 것을 놓고 큰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강연이 예고되자 뉴욕 경찰은 경비를 대폭 강화했고, 대학 주변에는 수백 명의 학생이 몰려들어 시위를 벌였다. 강연장 바깥에는 "총장님, 빈 라덴을 초청하지 못해 애석하지요?"라며 리 볼링거 총장을 비아냥대는 유인물이 뿌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초청한 컬럼비아대의 결정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로서는 괜찮다. 하지만 나라면 테러지원국의 수장을 초청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볼링거 총장은 아마디네자드의 강연에 앞서 따끔한 지적을 하기도 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볼링거는 "당신은 편협한 독재자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대학살)를 부인한 것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도발적이거나 놀랄 만큼 무식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볼링거 총장은 이에 앞서 그의 초청을 비난하는 학생들에게 "건강한 토론의 장을 제공한 것은 우리 대학의 오랜 전통"이라고 설명했다.

연단에 올라온 아마디네자드는 "이란에서는 연사를 초청하면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할 뿐 연사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으며 학생과 교수들에게 미리 면역주사를 놓지는 않는다"고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이어 "여러분(미국)은 제5세대 핵폭탄을 개발해 이미 실험을 마쳤으면서도 원자력 발전(發電)을 원하는 다른 나라(이란)엔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반미 성향을 드러냈다. 그는 "나치 독일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론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는 700여 청중의 약 70%는 아마디네자드를 반대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아마디네자드는 "비극적 사건에 대해 애도를 표시하기 위해 그라운드 제로(9.11 테러로 붕괴된 뉴욕 세계무역센터 부지)를 방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국제법에 의해 맨해튼 전역을 방문할 수 있었으나 뉴욕 경찰이 방문을 막은 걸 비꼰 것이다.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한 온라인 티켓은 90분 만에 매진됐으며, 강연장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은 4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대학원생 스티나 렉스텐은 "이란의 끔찍한 인권 상황과 표현의 자유를 혼동해서는 곤란하다"며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보여준 컬럼비아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컬럼비아대의 결정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대통령이 된다면 국익을 위해 이란 대통령과도 기꺼이 만날 의사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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