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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삶건강한삶>9년전 남편 잃은 嚴玲玉씨 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배우자와 부모중 한쪽을 잃은 자녀들이 슬픔을 삭여가며 겪어왔던 고통과 삶을 향한 몸부림은 더이상단순한 결손가정의 얘기로만 치부될수 없다.
열가족중 한가족이 바로 사별가족이라는 통계청의 발표에서 보듯수적으로도 간과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으며 정상적인 가족의 사람들이라도 언젠가는 사별가족의 슬픔을 겪게되기 때문이다.
서울송파구거여동에서 식당업을 하고 있는 嚴玲玉씨(43)는 9년전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 시어머니와 함께 씩씩하게 두아들을 키워가고 있는 家長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남편이 남겨놓은 공백이 왜그리 크게느껴지는지요.실의에 빠져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았습니다.』 88년부터는 정수기회사에서 영업사원,91년11월부터는 생명보험사의 보험모집원,93년부터는 부엌가구회사의 사업소장,힘들고 벅찼던 나날을 지나와 현재의「처가집 닭한마리」음식점경영에 이르기까지 嚴씨는 시어머니.두아들.시누이 두명의 부양 을혼자 맡아 해왔다.
『주부로 머물러 있었다면 일에 관한한 잠재해있던 능력을 영원히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嚴씨는 지난해 숟가락 하나까지 일일이 챙겨 막내 시누이를 시집 보냈을만큼 열성적으로 일과 집안챙기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사회엔 뿌리깊은 편모 슬하에서 자라는 아이라는,어딘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듯한 주변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金淵鎭(24.성균관대산업심리학 석사과정).淵世(20.대구대지역사회학과1) 두 아들을 바르게 키우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嚴씨는 털어놓는다.
큰아들이 고3이 되자 그는 다른 어머니나 아버지가 하듯 한밤에 차로 아이를 독서실에서 데려오고 학교로 바래다주기위해 운전면허를 땄다.
『엄마와 아빠 두 몫을 모두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솔직히 말했습니다.그 과정에서 아이들도 우리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율적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또래 아이들에 비해 일찍 깨달았다고 생각합니 다.』 嚴씨는 남편이 작고한지 5년이 되기까지가 경제적.심리적으로 가장 힘들고 외로워 건강까지 악화되었다고 회상한다.그때 자신처럼 일찍 홀로되어 살아온 시어머니 黃菊秋씨(68)의 위로와 배려가 큰힘이 되어 그시절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수 있었다고 한다.
『아내가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와이셔츠를 다려주듯 시어머니는출근 준비를 하는 저를 위해 모시옷에 풀을 먹여 하얗게 다려주곤 한다』고 말하는 嚴씨에게는 일반가정에서 아들을 사이에 두고흔히 벌어지는 고부간의 갈등이 오히려 부럽다.
남편이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므로….그는 시어머니와 한배를 탄동료로 가정을 이끌어온 것이다.
嚴씨는 사업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면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별가족들의 모임을 만들 계획을 갖고있다.
이들은『각자 지닌 한보따리씩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면서『그래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비해버리는 귀중한 시간을 아낄수 있다』고 말한다.
〈康弘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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