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46) 서울 강남갑 한나라당 공성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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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갑 현역 의원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이곳을 고수하면 안 됩니다. 강남이 대표적으로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지역이긴 하지만, 노정객들이 강남 벨트에 눌러앉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해선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는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과 요구를 결코 충족시킬 수 없어요.”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씽크 탱크였던 미래학자 공성진(51) 한양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최병렬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강남갑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공씨는 강남이 무너지면 한국이 무너진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자존심을 갖고 있는 강남갑 20만 유권자와 보수대혁명을 일으켜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고, 꿈과 희망의 내일을 찾겠다”고 말했다. 또 최 대표와 예비 경선을 치르게 된다면 진검승부를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경선 자체에 대해서는 그러나 부정적이었다.

“국민 사기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진성당원이 전무하고, 당원들 힘으로 정당 정치에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선 시기상조예요. 지금의 정치풍토에선 오히려 당원 급조, 돈 선거의 부작용을 낳을 겁니다.”

정치에 초연했던 공씨가 정치판에 뛰어든 건 “학자로서 심산 유곡에서 자연과 이치를 논하기엔 시대가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한백연구재단은 북악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산중호걸로 ‘독야청청’하기엔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공성진 박사의 개인 홈페이지 ‘미래광장’은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일반인들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맑은 미래·깨끗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기 위한 온라인 시민참여 광장으로 설계됐다. 그는 “꼭 전문가가 아니라도 미래를 구상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며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치부돼 온 종래의 퓨처 디자인(future design)에서 벗어나 일반 네티즌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그의 모교인 경기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미래광장’(www.GSJ.or.kr) 개통식.

“내년이면 우리나라가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 완전히 잠식 당하게 됩니다. 국정이 지금처럼 좌충우돌, 갈팡질팡해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건강한 대한민국이 갈수록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나라에도 격이 있습니다. 국격(國格)을 세워야죠.”

그는 2007년 대통령선거가 국운을 가를 마지막 승부처라고 주장했다. “대전환을 준비해야 할 이 시기에 누가 미래를 설계하느냐가 중요하고, 그에 따라 국운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강변했다. 어느새 그는 학자로 돌아가 있었다.

그가 미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3년 미국 클레어몬트대 대학원 시절. 행태주의 정치학에 식상해 있던 그는 저명한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의 강연에 빠져 들었다. 20세기가 안고 있던 환경오염 문제, 자본과 노동의 문제, 핵전쟁 위험에 대해 새로운 지식 시스템으로 접근한 미래학은 새로운 학문을 추구하던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 공성진 박사는 말 그대로 ‘장군의 아들’이다. 육사 출신의 공윤각 전 군사령관이 그의 아버지. 아버지의 후광을 피해 해병대 장교로 자원한 것을 그는 못내 자랑스러워했다. “강인한 정신적 유대감과 불굴의 의지를 불태운 날들이었다”고 군 생활을 회고하는 공 박사의 해병대 시절 모습(왼쪽).

86년 미래학과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그는 한양대와 한백연구재단을 오가며 지식 보따리를 풀었다. 한백연구재단의 전신인 미래구상연구소는 30대 후반의 소장 연구자들이 주축을 이뤄 미래학 세미나와 강연회를 열고 미래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는 “미래학자의 임무는 미래의 대변혁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과제와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미래학은 최선의 현재학’이라고 말했다.

국정에 대한 자문과 연구보고, 언론활동 등을 통해 공공의 영역과 연을 맺어 온 그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를 위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개혁적 보수’ 성향의 정책을 개발했다. 그는 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대한 구상을 이 후보를 통해 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집약체가 ‘미래를 여는 窓- 이회창의 정치철학과 비전’이란 그의 저서다. 이회창씨에 대해선 “행정 카리스마로 외부에서 영입한 CEO”라며 “관행에 물든 세태라는 호랑이 등에 탔다가 사지가 결박당한 채 좌고우면의 세월을 보내다 말았다”고 말했다. 그의 패인에 대해서는 “개혁적 성향이 강하고 진취적인 정치인이었지만 한국인의 감성과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등원하면 교육위나 국방위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 미래세대를 교육하느냐에 이 나라의 국운이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미래를, 그저 되는 대로 맞을 게 아니라 정확한 예측과 계획된 준비 속에 맞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남은 이른바 신정치 1번지이다. 전문가를 선호하고 40~50대의 정치 신인, 여자보다는 남자를 원하는 보수 성향의 중산층이 밀집돼 있는 곳이다. 이런 까다로운‘취향’을 만족시킬 만한 인물은 한나라당을 떠나서도 그리 흔치 않다. 그는 자신이 이 조건에 맞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외람되지만, 이곳 유권자들이 저를 뽑아 주면 대한민국이 복 받는 겁니다. 그동안 학자로서 쌓은 저의 모든 역량을 정치에 투입할 생각입니다. 이 나라의 미래에, 정치인으로서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경혜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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