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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우리 할머니가 치매일 줄이야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 두 살배기 딸과 모스크바의 할머니 댁을 찾았다. 할머니 기타(Gita)를 못 뵌 지가 1년도 넘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애리조나의 부모님 집에서 두 해 겨울을 나셨다. 그러나 결국엔 러시아로 귀향하기로 결심하셨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전보다 훨씬 창백했고 아파트는 지저분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차를 마신 뒤 딸과 나는 시차 때문에 밀려오는 잠을 자려고 거실 소파에 누웠다. 잠에서 깰 무렵 쿵, 하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비닐 포장된 꽁꽁 언 닭을 큰 칼로 자르려던 중이었다.

“저녁 먹을래? 할머니가 물었다. “한 토막 잘라줄게.”

할머니가 그 닭을 자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대였지만 할머니 집에서는 여섯 살짜리가 된 기분이었다. 할머니의 요리법을 놓고 어떻게 왈가왈부하겠는가. 할머니가 낑낑거리시는 모습을 보며, 언 생닭을 갑자기 근사한 요리로 바꿀 만한 비법이 있으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칼을 들고 도와드릴까, 하던 참이었다.

“왜 이렇게 질기다니!” 라며 할머니가 투덜거렸다.

“꽁꽁 얼었잖아요….” 난 미심쩍은 투로 말했다.

“그래? 얼었다고! 아이고, 늙으니까 이 모양이구나!” 할머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눈이 예전 같지 않아.” 할머니는 닭을 다시 냉장고에 재빨리 넣었다.

도와 드리기로 결심했다. 아파트를 치우고 요리를 했다. 수프를 만드는 도중 할머니가 얘기 좀 하자고 하셨다.

“정말 너무 잔인하구나.” 할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네 부모 말이다. 여기서 나 혼자 굶어 죽으라고 버려뒀다.”

할머니는 울기 시작했다. 난 피닉스의 부모님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가 엄마 때문에 굶어 죽겠대요! 돈이 한 푼도 없으시대요.”

어머니는 놀란 듯 숨을 삼켰다. “얼마 전에 1600달러 보냈는데. 웨스트 유니언(국제송금서비스)에서 할머니가 서명하셨어.”

“어떻게 하죠?” 난 엄마에게 물었다.

“돈을 찾아라! 아니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봐! 너도 어른이잖니.”

그날 밤, 할머니와 딸이 거실에서 TV로 축구경기를 볼 동안, 난 할머니의 침실을 뒤졌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침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회고록을 쓰시던 방이었다. 한 번 몰래 들어와서 할아버지 펜 뚜껑의 플라스틱 장식을 이로 뜯어내려 했던 적이 있다. 온통 이빨 자국을 내놓고 몇 주 동안 조마조마했다.

책상 서랍을 뒤지면서 할머니가 그 돈을 썼기를 바랐다. 아니면 환전소에서 도둑을 맞고는 얘기를 꾸며내거나 말이다. 돈을 찾으면,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뜻이었다.

결국 옷장에서 돈을 찾아냈다. 할머니는 수백 장의 루블(옛 소련 화폐 단위)과 달러를 오래된 비닐백과 무명천에 싸서 이불 아래 넣어놨다. 1600달러도 웨스트 유니언 영수증과 함께 거기 있었다.

축구 경기가 끝난 뒤, 내 딸아이는 화장실로 갔고 나는 할머니를 침실로 데려갔다.

“어머, 아니카!” 할머니가 외쳤다. “이 돈이 다 어디서 나왔니?”

나는 할머니 자신이 그곳에 보관했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할머니는 돈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딴전을 피우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괜찮아요, 할머니.” 난 위로했다. “그냥 잊어버리….”

“아니카.” 할머니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화장실에 있는 아이는 누구니?”

2년 뒤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병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전혀 아픈 티를 내지 않긴 했지만, 우리가 신경을 쓰지 못한 탓도 분명히 있었다. 피닉스에 계실 때 할머니는 산책을 나갔다가 동네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우리는 교외 주택이 다 너무 똑같이 생겨서 그렇다며 넘어갔다. 할머니가 모스크바에서 전화로 “아이들” 안부를 물어보셨을 때도 아이들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아서라는 생각을 못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한, 나의 부모는 아이였으며 나도 누군가의 손녀였다. 얼마나 나이를 먹든 할머니의 존재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 엄마가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언 닭을 잘라서 먹도록 놔두지는 않을지 두렵다.

[필자는 뉴욕 브루클린에 산다.]

ANYA ULIN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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