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은 해결사?:하(「파라슈트 키드」의 낮과 밤: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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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에 사무실 내고 출장영업/아예 한쪽부모가 현지 가기도/과대광고 성행… 직접 접촉한뒤 구해야 안심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S오피스텔­.
『알고 오셨겠지만 저는 사립학교만 핸들링합니다. 모든 수속은 물론이고 자제분이 현지에서 정착할 때까지 책임을 지지요.』
자녀의 조기 유학을 원하는 강남 주부들 사이에 「애프터 서비스까지 똑 소리가 나게 처리하는」 조기유학 전문가로 소문난 C씨(43·여)가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을 유학보내려는 Y씨(38·주부)와 상담중이다.
『저희는 미국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엄마가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해서요.』 『잘 오셨어요. 조기유학은 무엇보다 학교를 잘 골라야 하고 가디언도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면 잘못되기 쉬워요.』
「모든 것을 맡긴다」는 Y씨의 의뢰에 C씨는 지난해 하버드대에서 인문사회 계열 최우수논문상을 받고 졸업한 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아들이 다녔고 고 케네디 대통령 모교인 미국 동부 코네티컷 초트로스마리 홀고교를 권한다. 비용은 입학 수속비 2백50만원과 1년간 가디언 비용(guardian fee) 1백50만원을 합해 4백만원.
C씨는 이 분야에서 「가장 유능한 출장 가디언」으로 소문나 있다.
본인이 60년대 조기유학파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고 2명의 자녀가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C씨의 9월말∼10월중순은 자신이 유학보낸 조기 유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는 메인·코네티킷·뉴욕·뉴저지주 등 동부 사립학교 순회기간이다.
9월 신학기가 시작되면 새로 학생을 맡게된 교사나 학교 행정처에서 부모·보호자를 만나 학생의 학업 성과,장래 희망,부모의 주문,학교측 설명 등 보호자와 학교간의 유대를 중요시하는 미국학교들의 학부모 주간(parents week)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국 부모들이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학교측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갈 수 밖에 없어요.』
미국에서 결혼한 박사 남편을 따라 귀국한 C씨는 처음엔 같은 아파트에서 부업으로 중·고생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치며 조기유학을 원하는 학생의 수속을 한두명씩 도와주다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자 3년전 아예 사무실을 열었다. 그동안 C씨가 조기유학을 보낸 초·중·고교생은 2백명선.
출장 가디언으로 관리하는 학생은 그중 17명이다.
조기 유학생 수가 늘면서 학교 입학과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가디언도 여러 형태로 발전했다.
C씨와 같은 출장 가디언에서부터 자신의 집에서 관리하는 하숙 가디언,기숙사 생활을 하거나 따로 사는 학생을 관리만 하는 「망원」가디언,이름만 빌려주는 유령 가디언(paper guardian) 등. 최근엔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이 소문도 안나고 영어도 쉽게 배울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가에 따라 미국인 가정에 하숙을 시키는 경우도 생겨났다.
『사정이 있어 현지 보호자가 바뀌는 바람에 연락이 안됐던 거예요. 목사님을 현지 보호자로 지정했으니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세요.』
명문고가 몰려 있다는 속칭 「LA 8학군」인 LA남쪽 세리토스시 가아고교 상담교사 짐 마틴씨(42)의 사무실. 지난달 이 학교에서 제적된 앳된 모습의 김모양(당시 17세)이 마틴씨를 찾아와 서투른 영어로 사정을 하고 있었다.
김양은 중학교를 졸업한뒤 도미,92년 10학년(고1)에 편입한 조기 유학생.
○「8학군」 전입 겨냥
11학년이 되면서 무단결석이 잦았던 김양은 겨울방학을 앞두고 장기 무단결석으로 93년 10월말 제적처리됐다.
근심스런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김양의 뒷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던 마틴씨는 김야을 구제해보려는 심산으로 새 현지 보호자로 선임됐다는 한인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양이 일방적으로 3백달러를 들고와 현지 보호자를 맡아 달라는 사정을 했지만 김양 부모님과 사전에 아무런 상의가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김양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석달여 뒤인 2월 김양은 미국 LA선가에서 중앙선을 넘어 정면출돌 교통사고를 낸 차안에서 숨진 남녀유학생 3명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양에게 페이퍼 가디언이 아닌 진정한 보호자만 있었다면 복교나 전학이 가능했을 터인데….』
취재진에 김양의 사례를 들려주며 『가디언에게 돈을 보내는 것만으로 학부모의 책임을 다한 것은 아니다. 일정기간이라도 부모가 현지를 방문해 실질적으로 유학생을 보살피고 돌볼 수 있는 가디언을 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충고를 한국 유학생 부모에게 전해달라고 마틴씨는 부탁했다.
유학을 떠나보내고도 일류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학부모들이 소위 명문고가 몰려 있는 학군에 위장 전입을 위해 일류학군에 거주하는 유령 가디언을 이용했다 문제를 빚은 김양과 같은 경우는 현지 한국신문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미동부 뉴저지주의 세칭 「일류 학군」으로 꼽히는 버겐 카운티와 레오니아 학군에선 지난해 11월부터 위장 편입사례 실사에 나서 지난 3월 한국 조기 유학생 7명을 적발해 퇴교시켰고 이같은 조치는 미 전역으로 번져가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5월20일 뉴저지주 리버베일. 자취하는 조기 유학생 3남매를 수시로 관리해주고 3천달러의 현지 보호자 비용을 받아온 교포 이모씨(37)
조기 유학 여고생 A양(18)의 버릇을 고치려다 보호자 감금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까지 받았으나 A양의 부모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재판관에게 선처를 부탁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씨는 A양이 불량청소년들과 어울려 수시로 새벽에 귀가한다는 이웃의 말을 듣고 수차례 충고했으나 듣지 않자 19∼22세의 청소년 4명을 끌고가 A양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고 『다시 한번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겁을 주었다가 A양의 신고로 연행됐다.
사건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온 A양 어머니는 1주일간 숨어 A양의 생활태도를 지켜보다 이씨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재판관에게 『이씨의 행동은 심했지만 그 원인이 내 딸의 잘못에 있다』는 탄원서를 냈다. 현지 보호자를 믿을 수도,안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 알려지면서 생겨난 것이 「유학 이산가족」.
지난해 가을 『피아노 레슨비와 국·영·수 과외비로 월 2백만원이 넘게 들 바엔 아예 유학을 보낸다』며 딸(17)을 뉴욕에 보낸 주부 황모씨(44). 모회사 간부인 남편을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서울에 남긴채 이산가족 생활을 한지 8개월째 접어들었다.
어학원 선생님을 가디언으로 삼아 유학을 보낸뒤 딸을 방문했다 결국 현지 뒷바라지를 결심하고 플랫(연립주택과 아파트의 중간 형태) 1채를 월 1천1백달러에 세내 눌러앉았다.
○보호자·부모 속여
두집 살림을 하는 황씨는 『외삼촌을 통해 소개받은 교민을 현지 가디언으로 삼기 위해 미국에 건너와서 보니 안되겠습니다. 말뿐인 현지 보호자도 그렇게 많고 현지 보호자와 부모를 동시에 속이고 하숙에서 나와 독립해선 문란한 생활을 하는 유학생들도 그렇게 많더라』고 말한다.
황씨는 『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돌봐줄 가디언을 구하지 못한다면 대학진학때까지 이산가족으로 남을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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