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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대반전 … '현대판 차르' 의 야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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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슬라브 민족주의를 앞세운‘힘의 러시아’가 부활하고 있다. 러시아 군 의장대가 13~16일 열린 ‘크렘린 국제 의장대 축제’에 앞서 12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세계 각국의 의장대와 군악대 1000여 명이 참가해 각종 공연과 퍼레이드를 펼쳤다. 군사대국으로 새롭게 발돋움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우랄산맥을 넘으면 시베리아가 시작된다. 그 초입에 예카테린부르크가 있다. 1917년 10월혁명이 일어난 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이곳으로 유배 온 다음해 가족과 함께 참혹한 최후를 맞은 도시다. 11명이 과격 공산주의 혁명분자(볼셰비키)에 의해 사살된 뒤 시체는 불태워졌다.

80년 세월이 흐른 99년 유전자 확인 작업으로 신원이 밝혀진 황제 일가의 유해는 페테르부르크 성당에 안치됐다. 예카테린부르크의 황제 일가가 처형된 곳엔 '피 위의 성당'이란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 있다. 2003년 황제 피살 85주년을 맞아 세워졌다. 황제의 제단을 찾은 방문객들은 연방 고개를 숙이며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다.

올 초 러시아 정교회는 모스크바 중심가 혁명광장에 남아 있는 마르크스 동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니콜라이 2세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미 정교회는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을 성인으로 추대하고 이 교회에 그들의 성상을 모셔놓고 있다.

차르(황제)의 부활을 고대하는 것일까. 물론 과거의 전제정치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러시아는 또 다른 혁명 열기에 휩싸여 있다. 슬라브 민족주의를 앞세워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러시아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옛 소련은 한때 미국에 맞서면서 양극체제를 이뤘지만 90년 붕괴되면서 미국에 유일 초강국 시대를 열어줬다. 역사의 반전이다. 하지만 이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주도로 국력을 길러 새롭게 역사의 대반전을 꾀하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는 ‘피 위의 성당’. 니콜라이 2세 황제 일가가 살해된 곳에 2003년 세워진 러시아 정교회 성당.


19일 오전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 러시아와 소련의 심장부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90주년을 맞는 10월혁명의 열기는 느낄 수 없다. 광장 중앙에 붉은색 화강암으로 세운 '사회주의 혁명의 아버지' 레닌의 묘는 한때 참배객이 줄을 섰지만 외국 관광객만 북적거린다. 혁명 9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카드 하나 찾아볼 수 없다. 2004년 11월 푸틴 대통령은 10월혁명 기념일(11월 7일)을 폐지했다.

혁명과 공산주의가 밀려난 자리에는 '푸티니즘(Putinism)'으로 채워지고 있다. 민족주의와 실용주의가 결합된 푸틴의 통치 스타일이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내건 그의 카리스마에 국민은 열광하고 있다. 2년 반 전에 출범한 '나시(Nashi.우리들)'라는 청년 조직은 푸틴의 정치구호를 확대 재생산하는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해 현재 2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정치 안정과 함께 때마침 찾아온 고유가를 활용해 푸틴은 러시아 경제를 성장 궤도에 올려놓았다. 90년대 초반까지 텅 비어 있다시피했던 크렘린 맞은편의 '굼(GUM)' 백화점은 어느새 명품점으로 탈바꿈했다. 모스크바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3분의 2 정도가 고급차들이다. 벤츠나 BMW는 너무 흔한 차가 돼버렸고 그보다 훨씬 비싼 명차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강한 러시아에 대한 열망은 뜨겁다.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푸틴의 인기가 여전히 70% 안팎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개헌을 해서라도 푸틴에게 3연임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강국을 만드는 그의 능력이 입증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론들은 푸틴의 8년 실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90년 전 혁명 당시의 레닌 인기를 연상시킬 정도다.

모스크바.예카테린부르크=유철종 기자

◆10월혁명=1917년 러시아 고유 달력으로 10월 25일(양력 11월 7일) 일어난 공산주의 혁명. 그해 2월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 황제가 물러나고 임시 정부가 들어섰으나 대중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이 틈을 타 볼셰비키는 당시 수도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들과 봉기해 레닌이 이끄는 소비에트 정부를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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