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사업자로 출발 … 이젠 미디어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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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9일 서울 여의도의 하나로텔레콤 사옥. 1층 로비에서 열리고 있는 ‘초고속인터넷 속도 체험전’은 하나로텔레콤의 변신 과정을 잘 그려 놓았다. 전화 모뎀에서 시작해 비대칭가입자디지털회선(ADSL), 광랜(Optic Lan), 초고속디지털가입자회선(VDSL) 등으로 점점 빨라진 초고속인터넷 속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TV포털 ‘하나TV’ 시연장은 하나로텔레콤의 오늘을 웅변한다. 현장에서 소비자 반응을 지켜보던 하나TV 콘텐츠마케팅팀 김경호 과장은 “10년 전 공채 1기로 입사했을 때만 해도 우리 회사는 제2 시내전화 사업자에 불과했다”며 “하나TV 출시 뒤부터 미디어 기업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하나로텔레콤이 23일로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1997년 이 회사가 문을 열면서 우리나라 유선통신 시장은 경쟁체제로 전환했다. KT와 하나로텔레콤 간의 유선망 경쟁으로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 시장은 몰라보게 성장했다.

 97년 6월 정보통신부로부터 제2 시내전화 사업자로 선정된 하나로텔레콤은 LG데이콤·한국전력·두루넷 등 444개 업체가 연합 출자한 대규모 컨소시엄을 등에 업고 출발했다. 정통부 추천으로 초대 사장이 된 신윤식 전 체신부 차관은 시내전화 사업만으론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초고속통신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 회사는 업계는 물론 정부의 우려를 뚫고 전화 모뎀보다 100배 빠른 ADSL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선보여 파란을 일으켰다. 2002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 시내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다운 앤드 플레이 방식의 주문형비디오(VOD) TV포털 ‘하나TV’ 서비스에 나서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의 상용화 길을 열었다 . 최근 이 회사의 박병무 사장이 “하나로텔레콤은 통신회사가 아닌 종합 미디어 기업”이라고 선언할 만큼 하나로텔레콤은 발 빠르게 변신을 거듭했다. 경영 성적표도 나아졌다. 지난해 860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올 2분기에는 9분기 만에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몸매를 가다듬은 하나로텔레콤은 지금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2003년 이 회사의 경영권을 쥔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은 요즘 골드먼삭스를 주간사로 삼아 지분 매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국내 업체인 온세텔레콤과 미국계 펀드인 칼라일, 캐나다 투자은행인 매쿼리 등이 지분 인수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초 이달 중순으로 예정됐던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작업이 늦춰지면서 매각 작업이 난항에 부닥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로선 칼라일이 가장 유력한 인수처로 꼽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나로텔레콤이 하나TV 출시 성공,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힘입어 경영 정상화의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미래가 꼭 밝은 것만은 아니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정체된 데다 하나TV의 수익 전망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적잖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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