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美언론의 백악관 챙겨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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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故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여사의 죽음을 두고 온 미국이떠들썩하다.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스등 주요 일간지들은 다투어 재클린여사의 일생을 다룬 특집을 내고,방송사들도 장례식을 생중계하는등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재클린여사는 케네디대통령이 암살당한 뒤 그리스의 세계적 부호오나시스와 재혼했다.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재클린은 영원한 케네디대통령의 미망인인 것같다.
재클린여사에 대한「국모 대우」는 클린턴 대통령과 언론들이 그녀를 평가하는 데서도 확연히 느껴진다.
『미국 국민에게 난관을 극복하는 용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사람』이라는 찬사와 극존칭들만 이어질뿐 과거의 사생활등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미국민들의 전임자에 대한 예우는 지난달말 타계한 닉슨 전대통령 장례때도 잘 드러났다.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여론의 집중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도중하차한 그였지만 언론들은 퇴임후 그의활동등에 높은 평가를 해가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대접을 아끼지않았다. 백악관 주인이었던 두사람의 죽음을 다루는 미국 언론의자세에서 이채롭게 느껴지는 것은「백악관」이라는 말에 유달리 애착을 보인다는 점이다.
백악관은 그 자체만으로 신성시될 수 있다는듯한 태도다.최고의존칭과 존경의 표상으로 삼으려는 기색들이 역력하다.
대통령 또는 대통령부인에 대해 자연인으로서는 문제를 삼았을지몰라도 백악관 자체에는 존경과 위엄을 모아주는 無言의 약속같은것이 있다.
미국 언론의 이같은 자세가 물론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대통령 미망인의 재혼이나 대통령의 비윤리적인 행위로 인해 미국민들이 받았던 상처와 자존심의 손상을 덮어 버리려는 뜻이 담긴 과대 포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닉슨 전대통령의,그리고 재클린여사의 장례식에서 엿보인미국 여론의 백악관「챙겨주기」는 각별한 것을 느끼게 한다.전임자를 깎아내리고,전임자들끼리 상종조차 꺼리는 사연을 겪어야 했던「청와대」가 지금 우리들 눈에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지 되짚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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