綠靑瓷 조선까지 쓰였다-원광대 尹龍二교수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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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청자나 분청사기.백자에 가려 일반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綠靑瓷가 실은 조선시대초기까지 쓰인 서민용 생활자기였음을 밝히는 새로운 주장이 발표됐다.
원광대 尹龍二교수는 최근 열린 연세대박물관의「고려.조선시대 사기그릇특별전」에 소개된 15~16세기 녹청자의 실물을 제시하면서 이같은 주장을 폈다.
녹청자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녹갈색 유약이 묻어있긴 하지만 표면의 곰보자국이나 울퉁불퉁한 생김새등 조악성으로 보아 세련된 고려청자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왔다.특히 70년대이후의국내도자사에서는 신라시대의 토기가 청자로 이행되 는 과정에서 탄생된 그릇으로 못박아 설명해왔다.尹교수는 이 특별전도록 논문을 통해『녹청자는 최근 확인된 실물들을 볼때 고려초기부터 중.
후기에 걸쳐 생활용 막청자로 널리 제작.사용됐음을 알수 있다』며 특히『조선초기의 분청사기 가마터에 서도 분청사기병과 꼭같은형태의 녹청자병이 발견된 예가 있어 조선시대초기인 16세기까지계속 제작됐음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들 녹청자들이 발견된 가마터로 尹교수는 고려초기의 龍仁 西里,중기의 扶安 진서리,말기의 海南 진산리일대를 들었다.
尹교수는 녹청자가 청자와 마찬가지로 唐宋교체기에 중국의 청자기술자들이 고려를 왕래하며 기술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지적했다.
녹갈색이나 고동색을 띠는 녹청자는 크게 보아 유약을 칠한 흙그릇으로서 모래등 잡물이 섞인 胎土위에 나무를 태운 재를 유약으로 사용해 만든 그릇이다.
녹청자라는 이름은 해방후 인천 경서동 가마터를 발굴하면서 작고한 崔淳雨전국립박물관장이 청자와 비슷한 색깔과 유약을 썼다고해서 붙인 이름이다.
당시 崔관장은 분청사기 파편과 함께 출토됐다는 이유를 들어 녹청자를 14~15세기의 것으로 추정했으나 70년대들어 唐末 중국의 지방가마에서 제작되던 청자의 영향이 전래되면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제기돼 학계의 정설로 굳어졌다.
〈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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