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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군인 혈액 채취 의무화 검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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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6900명의 무명용사가 안장돼 있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는데도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 군 당국은 전사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군번줄(인식표)이나 육안 검사, 치아 검사법 등을 사용한다. 이런 방법으로도 안 되면 유전자 검사법을 쓴다. 시신에서 채취한 유전자와 유가족의 유전자를 대조하는 것이다. 유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찾기 힘들면 무명용사로 남는다.

현대전은 예전에 비해 치명적이고 파괴력이 높은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전자 대조법의 필요성이 크게 높아졌다. 1991년 걸프전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298구의 시신 중 30%는 지문검사를 할 수 없는 상태였고 14%는 손가락이 없었다. 20%는 치아 확인이 불가능했고 26%는 너무 많이 훼손돼 검사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장 효율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려면 살아 있을 때 혈액이나 인체 조직을 채취해 보관해뒀다가 사망하면 시신 유전자와 대조하는 것이다. 일종의 ‘자가 대조법’이다.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 안희중 과장은 “이 시료를 상온에서 보관하면 약 14년, 영하 20도 이하 저온에서는 50년 이상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시신-유가족 대조법’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우선 유가족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또 유가족 대조법으로 친족임을 입증하려면 남자는 4촌, 여자는 3촌을 넘어서는 안 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미국ㆍ영국 등 선진국은 오래전에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미 의회는 1990년 군인의 DNA 검사를 위한 혈액 및 신체 조직 수집을 의무화한 프로그램을 승인하고 예산을 지원했다. 미 육군 유전자 감식연구소는 모든 군인(4월 현재 566만1000명)의 혈액을 보관하고 있다. 미국은 일주일에 6만 개의 샘플을 입력하고 있으며 현재 영하 22~23도에서 냉동 보관하고 있다.

우리 국방부도 전사자나 실종자(포로 포함) 신원을 확인할 때 ‘시신-유가족 대조법’으로는 한계가 있어 혈액 키트를 이용한 ‘유전자 자가 대조법’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앞으로 발생하는 전사자의 신원을 100%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도입하려면 신원 확인용 채취 키트, 진공포장 장비, 보관 시설 등이 필요하다.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 김재훈 소장(대령·공사28기)은 “무명용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면서 “해외 파병이나 혹시 모를 전쟁에 대비해 사전 혈액 채취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혈액 채취를 뒷받침할 법률을 제정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은 모병제이지만 우리는 징병제이기 때문에 제대 후에도 혈액 샘플을 계속 보관해야 하는지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시료 채취에는 동의하더라도 제대할 때 폐기해 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할지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

고성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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