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1년 평균 90만원 넘게 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호 12면

미국 아이오와주에 사는 탈야 레만(14)은 2005년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하자 ‘이재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미국 어린이들이 매년 10월 말 핼러윈 데이 때 귀신복장을 한 채 이웃집을 찾아다니며 “사탕 안 주면 놀려줄 거야(Trick or Treat)”라고 말하는 데 착안하게 됐다. 사탕 대신 카트리나 피해자를 위해 모금하는 놀이를 생각해낸 것.
레만은 웹사이트와 e-메일로 이 같은 계획을 널리 알렸다. 그러자 이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어린이들이 쇄도, 2주 만에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됐다.

미국의 기부문화

플로리다주의 한 남학생은 강아지를 사려고 2년간 모아둔 217달러를 내놓았고, 조지아주의 한 초등학교 5학년생들은 동네에서 세차 등을 하며 5058달러를 벌어 기부했다.
핼러윈 데이 행사로 시작한 운동은 못 쓰는 동전 모으기 운동으로 이어졌다. 레몬주스와 빵, 팔찌 등을 만들어 팔면서 돈을 모은 어린이들도 있었다. 미국의 수많은 어린 학생들은 한두 푼씩 모아 ‘태산’을 만들었다. 넉 달 만에 기부금이 500만 달러를 넘었다. 미 전역의 어린이들이 참여한 이 운동은 1년 만인 2006년 8월 1000만 달러(약 95억원)를 돌파했다. 코카콜라·GE·쉐브론·버라이즌·AT&T 같은 대기업이 낸 기부금보다 많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기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서는 아무리 부자라도 자선과 기부에 인색하면 부자들의 모임에 초대받지 못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몸에 배어 있다.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공원 오솔길의 작은 벤치나 공공시절의 작은 조각품 등에 “이 벤치(조각품)는 ○○○의 기부에 의한 것입니다”라는 안내문을 접할 수 있다. 일상화된 기부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별한 이벤트를 벌이지 않고 일상에서 행하는 기부도 많다. 2001년 8월 부시 대통령이 감세공약을 실천에 옮겨 세금 감면분이 납세자들에게 우편으로 배달되기 시작했다. 결혼한 부부들은 대체로 600달러 정도를, 독신자는 300달러 정도를 받았다. 자신이 낸 세금을 돌려받는 것인데도 시민들은 고민을 했다. 외식·쇼핑·공연관람 등에 쓴 이들도 있었지만 소방서·경찰서·시민단체 등에 기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기부의 나라’ 미국의 한 해 기부액은얼마 정도일까. AP통신과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인이 기부한 자선기금 총액은 2950억 달러(약 273조원)에 달했다. 미국 인구(3억 명 기준)를 감안할 경우 1인당 약 92만원을 기부한 셈이다. 2005년 2830억 달러에 비해 120억 달러, 4.2% 증가했다. 연간소득 10만 달러 미만인 사람의 65%가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자선사업가를 ‘레인메이커’라 부르며 가장 명예로운 직업으로 여긴다. ‘사회에 단비를 내리게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기부를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생각하는 시민들과 ‘레인메이커’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미국을 떠받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