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망할 놈의 위선만 버리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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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25면

프랑스 작가 조르주 바타유(1897~1962)의 음란소설 『눈 이야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지상에 여태껏 존재했던 존재들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천사 같은 존재의 변덕을 만족시키는 데 도취적 기쁨을 느끼던 에드먼드 경은 우리를 세비야로 데려갔다.” 이 문장을 보며 나는 세상의 권위와 억압을 무절제와 에로티시즘으로 저항하고자 『눈 이야기』를 썼던 작가가 에드먼드 경으로 하여금 그들을 왜 하필 세비야로 데려가게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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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먼저 떠오르는 것은 투우였다. 스페인 세비야는 투우의 본고장으로, 이 잔인한 스포츠를 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가 이곳으로 몰려든다. 그들 말에 따르면 이건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란다.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 식대로 표현하면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포츠’. 하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숨 막히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인간들의 왁왁대는 광기 속에서 소가 영문도 모르는 채 죽어가는 꼴은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다만 세비야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황금처럼 빛나는 투우장 건물을 보며 이런 생각은 했다. 이 망할 놈의 위선을 버리면 혹시 나도 스페인 사람들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는.
하지만 플라멩코에 관해서라면 나도 얼마쯤 판타지가 있었다.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중심지로 “그라나다의 플라멩코가 열정적이긴 하나 좀 촌스러운 반면 세비야의 그것은 보다 세련되고 품위가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어디서 볼 것인가가 문제다. 플라멩코는 원래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들이 자기들끼리 삶의 애환을 달래기 위해 즐기던 춤과 음악이었는데 지금은 지나치게 관광화되어 이런 말이 흉흉했다. “플라멩코는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아무 곳에도 없다(Flamenco is everywhere and nowhere).” 그러니까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진짜 살아있는 플라멩코를 붙잡으려면 기지와 운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하지만 세비야는 투우와 플라멩코가 아니더라도 세상 어느 곳보다 거리마다 모퉁이마다 모험할 곳이 많은 곳이다. 한때 이 도시를 지배했던 무어인의 강렬한 영향으로 세비야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하고는 아예 색깔부터 달라 보인다. 게다가 이들은 돈 후안과 카르멘의 후예들이다. 호탕하며 다정한 쾌락주의자들의 도시. 언제 어디서나 큰 소리로 웃고 잘 떠들고 밤새도록 춤추고 노래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동네 바나 카페에서 얼마간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비야가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결국 기회가 왔다.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것이 과연 내게 일어난 일인지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검고 긴 숄을 두른 육중한 체격의 집시 여가수가 내 옆자리에 앉아서 노래를 불렀고, 그 옆에 앉은 두 명의 남자들이 신들린 듯 플라멩코 기타를 연주했다. 사람들이 발을 굴렀고 몇몇이 자진해서 일어나 춤을 추었고 몇 개의 유리잔이 깨졌다. 그때 난 술에 취해 있었고 어떤 종류의 격정에 나 자신을 완전히 방기한 상태라 그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단 한 번도 플라멩코를 배워본 적이 없는 어떤 동양 여자가 플라멩코 비슷한 막춤을 추어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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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허니’ 김경씨는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인터뷰어로 개성 넘치는 책 『뷰티풀 몬스터』『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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