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조 굴릴 생각에 밤잠도 설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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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우리나라 한해 예산보다 훨씬 많은 돈을 굴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밤잠을 설칠 때도 있지요. "

한국은행의 김웅배(金雄培.54.사진) 외화자금국장은 요즘 몸과 마음이 더 바빠졌다. 근래 외환보유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이를 총괄하는 중앙은행의 주무 간부로서 할 일이 많아진 때문이다.

직원 57명의 부서(거래 실무 인력은 30여명)에서 1천5백67억달러(약 1백84조원, 15일 현재)의 외환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중국.대만에 이어 세계 넷째다.

외환보유액은 1999년 말 7백41억달러이던 것이 지난해 들어 외국인 주식 투자와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가 몰려들어 4년 만에 두배 이상이 됐다. 외자국의 한 운용팀은 7명이 무려 7백억달러를 굴리고 있다.

채선병 운용기획팀장은 "미국 재무부 증권 같은 다양한 채권에 돈을 많이 묻어놓은 터여서 달러 환율이 계속 올라갈지가 역시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이 늘면 '국가 비상금'이 넉넉해지니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통화량 조절을 위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통안증권 발행 잔액은 1백5조원으로 연간 이자가 5조원에 달한다. 그래서 외환보유액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이제 수익성까지 신경써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한은은 외자국의 규모 및 기능을 더욱 키우려 하고 있다.

金국장은 "우선 우리 직원을 일당백의 전사로 키우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70년대 초반 공군에서 복무할 때 요즘 화제가 된 실미도 부대의 서울 본부에서 행정병으로 일했다. 실미도에 가서 훈련 모습을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실미도 대원들은 정말 북한의 1개 사단과 대적할 만한 수준이었다"면서 "우리 직원들도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라톤 완주, 백두대간 종주 등 경험이 있는 그는 직원들에게 "성공적인 투자는 건강한 심신에서 나온다"고 늘 강조한다. 전 직원이 등산.테니스 등 운동 한 가지는 꼭 하는 것도 그의 영향이 컸다.

金국장은 한은에서 대표적 국제금융통으로 2년 가까이 현직을 맡고 있다. 미 월가에선 'BOK(한은) 웅바이 킴'하면 알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외환보유액 가운데 2백억달러 가량을 떼내 한국투자공사(KIC)라는 별도의 운용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장차 한은과 재경부가 외환보유액을 놓고 수익률 경쟁을 벌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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