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타는 여권/다독거려도 꼼짝않는 토라진 불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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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방선거 영향 큰데…“ 해법없어 고민/깊어진 불신… JP 사과방문도 무산
정부·여당이 석탄일을 앞두고 등돌린 「불심」 다독거리에 온 신경을 쏟는 인상이나 한번 돌아선 불심이 돌부처처럼 꿈쩍하지 않아 애태우고 있다.
조계사 폭력사태를 고비로 뒤틀어진 불교계는 전국 사찰에 「김영삼대통령 사과와 최형우 내무장관 사퇴」 현수막을 일제히 내거는 등 대정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여당성향인 불교계의 이같은 등돌림 현상은 김 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고 있으며 각종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선 민자당의 입장에서도 현안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여권은 석탄일을 계기로 불심 돌리기에 총력을 기울여 김 대통령과 조계종 새 지도부의 청와대 면담을 추진하고 민자당 고위관계자들이 불전을 방문하는 등 진무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좀체 먹혀들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국가원수가 불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부처님 오신날을 축하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면 관계개선에 다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계종측의 월하종정·탄성 총무원장 등 새 지도부로서도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는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고 승려들이 사찰내에서 치고 받는 추태를 연출한데 대한 일반의 따가운 시선도 의식히자 않을 수 없는 불교계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청와대 회동」은 급속도로 추진됐다.
조계종쪽에서 먼저 운을 뗐다는 말도 나올 정도. 문화체육부는 즉각 불교계 지도자들의 청와대 방문을 추진,석탄일 이틀전인 16일 오찬회동하는 형식까지 의견접근이 이뤄지는 등 구체화됐다. 문화체육부와 조계종은 면담석상의 원만한 대화를 위한 「발언수위」 조율작업을 진행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의 내밀한 접촉은 조계종 내부 강경론자들의 대통령 사과와 내무장관 퇴진 주장으로 결국 무산됐다.
이들은 『청와대에서 밥만 먹고 나오려면 갈 필요가 없다』며 사전보장없이는 응하지 말 것을 종정 등에게 강력히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문화체육부는 『청와대 면담을 두번 다시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이런 분위기속에서 강행했다가 모양이 안좋으면 정말 큰 일』이라고 결론,『아직 시기가 이른 것 같다』며 청와대에 「연기」를 건의했고 그대로 채택됐다.
○…민자당 김종필대표는 13일 오후 조계사에서 열리는 월하스님의 종정추대식에 참석하려던 일정을 취소했다.
당 불교신도회장인 곽정출의원이 파악한 조계사 분위기 때문이다. 곽 의원은 김 대표의 지시로 12일 탄성 총무원장을 개혁회의측 스님들을 만나본 결과 김 대표가 참석할 경우 불상사가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을 하고 참석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건의한 것이다. 조계사측은 『김 대표에게 보낸 초청장은 의례적인 것이며 불교계측은 현재로서 불교신도가 아닌 여당 정치인을 만날 의사가 별로 없다』며 완곡하게 초청을 취소했다.
당초 김 대표는 이날 추대식에 정각회 회원들과 참석,축하와 함께 여권을 대표해 조계사 사태에 대한 사과의 뜻을 표하는 진사의 모양새를 갖출 계획이었다.
이는 최근 깊어진 불교계와의 불신의 골을 매우려 고심하고 있는 여권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여권에서 「불심」을 달랠 수 있는 뾰족한 묘안이 없다는데 있다. 개혁회의측의 「김영삼대통령 사과와 최형우 내무장관 해임」 요구에 대한 마땅한 대처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문제해결을 위한 최 장관의 사과의사를 타진해봤으나 최 장관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 장관은 『조계사 진입은 불가피했으며 사과할 수 없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답답한 곽 의원은 대안으로 「김 대표 사과」를 제안했으나 개혁회의측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정부가 불교계 불만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불교신도인 한 의원은 『여권과 불교계의 깊어진 불신의 골을 메울 수 있는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면서 『지금으로서는 사태가 장기화될 수 밖에 없다』고 난감해하고 있다.<김현일·박병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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