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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통일부총리에 들어본 대북정책/박준영 정치2부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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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의 중국식 개방 적극 도울 것”/몇달내 핵해결 확신… 다음 대응책도 이미 준비/보수니 진보니하는 교조적 시각 벗을 것/정전협정 바꾸는 문제는 남북협상으로
이홍구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취임후 중앙일보와의 첫 단독인터뷰를 갖고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밝혔다.
다음은 4년만에 다시 대북정책 사령탑을 맡은 이 부총리와 10일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용이다.
­88∼90년 통일원장관 재직때 한민족공동체 방안을 설계했는데 현 정부는 화해협력­연합­통일이라는 3단계 3기조 정책으로 정리하고 있다. 두 개념에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하는가.
▲한민족공동체 방안과 3단계 3기조 통일방안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지난해 7월 통일방안을 발표하면서 「한민족공동체의 틀안에서」라고 말한데서 알 수 있듯 정부의 통일방안은 남북한이 한민족공동체로 이행해가기 위한 단계를 3단계로 구분해놓은 것이다.
바꿔말해 3단계는 사실 한민족공동체 안에 포함된 것인데 이를 좀더 명확히 한 것이다.
따라서 4년만에 다시 통일원으로 돌아왔지만 통일방안에 관한한 아무런 변화가 없고 일관되게 밀고 갈 수 있다.
­대북정책에 큰 변화가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새정부 들어 대북관계에 새로운 접근이 시도됐으나 그후 핵문제가 불거지며 보수·진보 시각이 갈리는 양상이 있다. 통일부총리로서 이를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
▲크게 봐서 두가지다. 우선 그동안 소련의 해체와 독일 통일 등 큰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단순한 일과성 사건이 아니라 지난 1백년간 진행된 사상과 이념의 시대가 종식됐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의 당면과제는 이같은 세계사적 탈냉전 흐름의 예외지역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문제를 전쟁이 아닌 대화로 풀어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도 남북관계는 물론 사회전반이 하루빨리 과거의 교조적 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특히 가장 진취적이야 할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중 일부가 아직도 20세기초의 교조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무작정 교조적 이념에서 탈피한다면 자칫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통일에 대비,보다 성숙된 시민의식 형성을 위해 민간이 주도하는 구체적인 통일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통일정책 변화없다
독일정부도 2차대전 직후 나치즘에 중독된 국민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키워내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국민정치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핵문제로 남북한 관계가 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시각으로 「핵­북한경협 연계」정책의 재검토를 비롯,대북정책의 조성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같은 주장에 상당한 일리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우선 순위다.
정부는 현재 남북한 관계에서 핵문제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속된 말로 핵문제는 정부 대북정책의 0순위다.
핵문제가 사상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핵문제 해결」이란 의미를 교조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핵문제가 1백퍼센트 말끔히 해결될 때까지 경협을 포함한 여타 문제를 무기한 연기한다는 입장이 아니다.
문제는 핵투명성인데 우리는 핵문제의 가닥이 몇년이 아니라 수개월안에 잡힐 것으로 전망하고 상황발전에 따라 경협재개 등 우리의 단계적 대응방안을 세워놓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다.
­결국 평양의 목표는 워싱턴과의 관계개선임이 분명하다. 미국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한다면 핵문제뿐 아니라 한반도의 긴장완화 등 여러 문제가 동시에 풀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미 정부정책은 그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불과 몇주일전 우리 정부는 선 특사교환 조건을 철회했다.
북­미 회담이 우리의 특사교환 요구로 잘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우리가 결단을 내려 과감히 철회했다.
이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결정이다.
또 여기에는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자신감도 뒷받침됐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다.
○핵해결 북선택 달려
북한이 원하는 것이 북­미 수교·경제지원 등이라는 것은 미국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평양은 그 목표를 위해 유일한 카드인 핵을 포기할 것인지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현재 남북,미­북,북한­IAEA 등 모든 문제는 북한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북한이 탈냉전이라는 세계사의 흐름속에 득이 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북한은 독일의 예로 보아 그같은 탈냉전 흐름에 적응하다가 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더 우려하는 것 같다.
▲사실 북한만큼 안전한 체제가 없다. 단 한나라도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있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체제붕괴 가장 우려
미국의 북한침공 준비설은 북한 자체 체제 결속을 우한 신화라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
미국이 뭐가 답답해서 북한을 침공하겠는가. 한국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북한은 위로부터의 군사·정치적 압력은 전무한 상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왜 불안한가. 불안의 진원지는 외부가 아니라 북한내부다. 북한 지도부가 인민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북한이 발전하려면 중국처럼 문호개방도 약간 해야 한다. 그런데 조선노동당은 중국 공산당 만큼 자신의 지도력에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이 문제는 북한 스스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오히려 외부에서는 경협 등 북한체제를 도와줄 준비가 다 돼있다.
다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북한이 외부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을 제거해주는 것도 북한을 변화시키는 한 방법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북한이 탈냉전의 흐름에 적응한다는 것은 북한의 남한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화에 가까운 것이 될 것이다.
또 북한이 중국모델을 참조해서 적응하려 한다면 우리는 북한의 체면을 살리고 가급적 북한체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그같은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도와줄 것이다.
­이인모노인 송환은 논란끝에 이루어진후 민족통일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국민중 79.2%가 「잘한 일」이라고 보았으나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며 잘못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은 최근 김인서·함세환 등 미전향 장기수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미전향 장기수 문제는 남북관계 전반 등 여러측면을 고려해야지 하나만 떼어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 국민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 노인 송환을 예기했다.
그러나 북한이 그를 전국 방방곡곡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인민대회를 여는 것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인도주의를 내세운 정치행위다.
또 우리에게도 지난 87년 납북된 동진호 선원 12명을 포함,납북 인사만 4백명이다.
따라서 우리는 며칠전 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언급했듯이 적십자회담이든 어떤 것이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남북이 인도주의와 관련된 모든 보따리를 풀어놓고 하나도 빠짐없이 포괄적으로 논의해서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북한은 최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미국에 제의하고 이의 일방적인 철수를 밝혔다. 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이는 핵문제의 초점을 흐리려는 전략적 측면이 강한 것으로 북한의 책임있는 행동을 지켜보겠다.
이 문제는 남북 당사자간에 직접협상으로 해결한다는 정책방향을 확고히 지켜갈 것이다.
○대화해결 원칙 견지
남북기본합의서(제5조)는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며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벌목공 수용정책이 주목받는 것은 이 결정이 북한정권과 주민을 분리해서 다룬 정책이기 때문이다. 북한정권과 주민차원을 분리하는 원칙은 앞으로도 계속 적용될 것인가.
▲남북문제는 기본적으로 대결구조와 이 대결구조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모순적인 이중구조로 돼 있다. 벌목공 문제도 한 예다.
따라서 정부는 이 문제를 인권과 남북관계 차원 모두를 고려해서 슬기롭게 풀어갈 생각이다.
이런 얘기는 얼핏 모순같이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란 결국 이같은 모순적인 상황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끌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정리=최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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