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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값-한계드러낸 상공부개입과 쌍용정유 인하관철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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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가 왜 규제를 풀고 發想의 전환을 해야하는지,기업의 논리와 경쟁의 원칙은 왜 존중되어야 하는지를 이번「油價 논쟁」처럼일반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도록 한 일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결국 소비자 이익으로 歸結된 이번 유가 논쟁의 과 정은 그런 뜻에서 無限競爭시대에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쌍용정유의 가격인하로 촉발된 정부와 기업의「휘발유 전쟁」은 4일부터 다른 정유사들이 일제히 값을 내림으로써일단 상공자원부의「KO敗」로 끝났다.
행정지도를 들고나왔던 상공자원부는 급기야『사태 추이를 두고 보겠다.지금까지 행정지도를 펴겠다고 공식 발표한 적은 없다』며물러서 있다.
그러나 이번 파문을 불러 일으킨 쌍용정유는 高옥탄가를 앞세워가격싸움을 품질논쟁으로 전환시킨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휘발유 전쟁의 여파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규제완화와 개방.경쟁,국제화 시대에 우리의 산업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를 경험적으로 보여준 試金石이라할 수 있다.
무한경쟁 시대에 경쟁의 주체인 기업의 경쟁을 더욱 촉진시키는쪽으로 가야지 가격과 소비자 서비스를 간섭하고 기존업계의 이익을 보호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재계는 특히 정부의 통제적 기능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에너지 분야에 처음으로 시장논리가 도입됐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누가 더 많은 주유소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던정유업계의 시장판도가「누가 더 좋은 기름을 싼값으로 소비자에게공급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쌍용정유가 이번 사태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쌍용은 공장도 가격을 인하한만큼 소비자 가격을 충분히 내리지않았고 그동안 가격인하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다른 정유사로부터「소비자를 위해서」라기 보다 계약경신을 앞두고 다른 주유소를 끌어들이기 위해 건 싸움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정유사들이 정면 승부 대신 1주일동안「정부를 앞세워」쌍용의 가격을 되돌리려 한 것은 더 보기 흉했다.
정유업계는 이번 가격인하 경쟁이 마냥 계속될 수는 없으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휘발유 출고가격을 지금처럼 ℓ당 10원씩 내리면 업계가 연간8백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다.
〈李哲浩기자〉 쌍용정유의 이번 휘발유 가격 인하 조치는 지난89년의「옥탄가 싸움」 때와 마찬가지로 업계 후발주자로서의 조바심과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정유업계 전체로 볼때 1천억원의 흑자를 냈는데 이중 쌍용정유는 7백94억원의 흑자로 1위를 기록했다.90년 2백60억원,91년 4백3억원,92년 7백71억원 등 흑자가 계속 늘고 있다.
지난 76년 이란과의 합작회사로 출발한 쌍용정유는 지금까지 업계에서「원유를 가장 싸게 들여오는 재주」를 가진 회사로 통한다. 쌍용정유는 80년대초 이란과 이라크의 8년 전쟁때 원유를싸게 들여와 이같은 흑자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당시 서방 각국이 이란産 원유 도입을 꺼려했지만 이란과 합작으로 회사를 세운데다 이미 장기 도입계약을 함으로써 쌍용정유는 오히려 국제시세보다 싸게 원유를 들여올 수 있었다.
최종 판매가와 마진이 정부 고시로 결정되는 우리나라 油價 구조상 정유사의 순익은 판매보다는 얼마나 원유를 싸게 들여오느냐로 판가름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유 5개사중 원유도입가가 가장 낮은 회사는 현대정유였지만 선박운임을 합친 도입가로 보면 쌍용정유가더 낮았다.
하지만 쌍용정유는 자금력에 비해 시장점유율은 주유소 수의 열세로 회사 창립후 18년간 업계 3~4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이 때문에 쌍용정유는 주유소 확보에 안간힘을 기울여온 게 사실이다.
그동안의 정유 업계간 주유소 확보경쟁은 소비자와는 무관하게「주유소에 대한 지원」경쟁을 가져왔다.대도시 주유소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 정유회사들은 시설자금으로 무이자 5억원에 기름 외상공급 1백일이라는 조건까지 제시하고 있을 정도다.
소비자와는 상관없는 이같은 경쟁때문에 현재 정유업계는 주유소에 대한 외상대금과 대여금만 3조5천억원이 깔려 있다.정유 5社의 총자본금 1조원의 3.5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쌍용정유의 조치는 결국『소비자들로서는 알 수도 없는 소모전 대신 자금력을 바탕으로 직접 소비자와 부닥쳐 보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朴承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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