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 유통 마비사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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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중매인들의 경매참여거부로 빚어진 농수산물 유통마비현상에 대해선 단호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농림수산부도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농수산물 유통단계가 지나치게 복잡한 나머지 중간이윤이 너무 커지고,결과적으로 최종 소비자가격이 4∼5배로 뛰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농수산물 유통구조의 문제점이다. 중매인들의 반발을 산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인상에 관한 법」은 이런 폐해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중매인들의 도매행위 겸업을 금지시켰다. 따라서 법취지 자체는 별로 나무랄데가 없다. 중간단계 이윤을 축소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양측을 보호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매인들이 도매행위에서 배제된 이후의 농수산물 거래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정부당국의 큰 실수다. 중매인들의 도매행위가 금지됐으면 생산자 조직이나 소비자조직이 이를 대신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유통단계 축소의 실효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원입법으로 이 법이 제정된지 1년이 지나도록 이 중간 거래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 법에는 지정 도매법인이 경매사를 두도록 했으며,이 경매사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입장에서 공정하게 경매를 알선하게 돼있다. 중매인들이 도매에서 빠지고,더구나 경매에까지 불참하면 시장기능이 마비되는 사정은 짐작되고도 남는 일이다. 정부는 시장기능 마비를 우려한 나머지 법이 금지한 기능마비를 우려한 나머지 법이 금지한 도매겸업을 당분간 더 인정하겠다는 궁색한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과연 제대로 된 행정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농수산물 유통단계를 축소하는 작업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도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론 무척 어렵다. 중간 유통단계가 다 불필요한 것도 아니고,어떤 것은 꼭 필요하기도 하다. 때문에 유통단계 축소작업은 상거래 관행을 잘 살펴가며 생산자 조직과 소비자 조직이 모두 거래에 뛰어들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키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전국의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물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계속 도매시장을 세워나가야 한다.
생산자가 주도하는 도매시장이 활성화되려면 농협같은 대조직,또는 품목별 도매법인의 시장참여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단위농협까지 도매기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보기능을 강화하고 출하조절을 위한 창고시설이 늘어야 한다. 도매시장에서의 경매행위가 여의치 못하고 보관·저장시설까지 미비하면 청쟁과 신선도가 생명인 농수산물은 아깝지만 버릴 수 밖에 없다. 흔히 생산자의 피땀이 서려있다는 말은 듣는 농산물이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정부는 사후대책에 만전을 기해 이런 충격적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다시 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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