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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부의 행정지도 만능발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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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공자원부가 기름값을 내리는 정유회사에 대해 그것을 철회토록 행정지도를 고집하는 처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가안정이 김영삼정부의 최대 경제현안인데도 불구하고 상공자원부가 기름값 인하를 막으려는 것은 그것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동이다.
지금 기름값은 한 정유회사가 주유소 판매가격을 ℓ당 15원가량 내린데 힘입어 딴 회사들도 잇따라 내리고 있는 중이다. 상공자원부는 기름값 인하가 유통질서를 문란케하고 세수감소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이를 반대해왔다. 가격인하경쟁에 동참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는 지금까지도 행정지도를 통해 값을 환원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상공자원부는 아마 관청의 행정편의를 기준으로 유통질서 「문란」을 말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그것이 문란인가. 업자의 가격담합,경쟁제한 행위가 유통질서를 문란시키는 것이지 가격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은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일부분이다.
또 세수목표,구체적으로 기름에서 걷히는 특소세와 부가세 징수의 차질을 얘기하는데 그것은 재무부가 해야 할 소리지,상공자원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세수가 꼭 문제라면 세제를 바꾸든가,세율을 올리는 것이 합당한 방법이다.
지금의 유가에는 메이커·대리점·주유소의 적정이윤이 포함돼 있다. 업자들이 단계별 이윤을 줄여 소비자가격을 낮추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정부가 이를 못마땅해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유가연동제에 의한 고시가격이 적정하게 책정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를 반성해야 한다.
상공자원부가 말하는 이른바 행정지도는 경제규제완화 대상 가운데서도 제일 먼저 없어져야 할 사항이다. 그런데도 일선 관공서는 이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특히 가격규제에 대한 행정지도가 제일 많이 남아있다.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규제완화시책의 효과가 미흡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법률·규정상의 규제완화에도 불구하고 행정지도 등의 규제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44.9%)이다. 그 다음이 건수위주만의 규제완화(26.9%),담당자의 무지와 고집(21.8%) 등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정지도를 통해 기름값을 내리는 정유회사를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상공자원부의 자세는 바로 행정규제에 집착하는 행정구태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고,물가안정에 기여하고,경쟁력 강화에 보탬이 되는 경제행위를 왜 굳이 막으려는가. 소비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정유회사의 높은 이익을 보장해야 할 무슨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상공자원부는 소비자의 희생까지도 불사하는 행정지도 만능주의·행정편의주의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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