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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공부] 인터넷·휴대전화 중독 아이들 e-미디어 다이어트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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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뭐니? 22만원? 강이 너, 휴대전화 어떻게 한 거야?”

 올 5월. 윤강(온수초·6년)군의 어머니 함명숙(39)씨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지난해 아들이 졸라 사 준 휴대전화 비용이 그 달에 무려 22만원이 청구된 것이다. 평소엔 월 2만원 정도 나왔다. 사실 윤군도 놀랐다. 한바탕 꾸지람을 들은 끝에 윤군이 울먹이며 털어놨다.

“그게요. 게임 아이템 사려고 휴대전화 결제를 몇 개 한 건데…그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어요.”

  윤군은 학생들 사이에 인기 높은 G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특정 아이템을 구입하면 싸움의 ‘공력’이 높아진다. 게임에서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 이것저것 구매하다 보니 정도가 지나쳤던 것이다.

 그때부터 윤군 가족은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먼저 윤 군의 게임·인터넷·휴대전화 사용량을 체크했다.

 윤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운 온라인 S게임에서 친구들 사이에 제법 ‘강자’로 알려져 있었다. 게임에 빠져들 땐 2~3시간 넘게 컴퓨터에 매달렸다. 학교 숙제도 컴퓨터로 제출하는 경우가 많아 어머니는 공부하는 줄 알았다. 간식을 차려 줘도 다 식을 때까지 게임에 매달렸다.

 휴대전화도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이 통화보다는 문자 메시지 기능(SMS)을 주로 사용했다. 함씨는 “친구들도 그 정도 쓴다고 해 정액제로 한 달에 500건을 넣어줬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모자라 집전화로 문자를 보내더라”고 했다. 윤군이 친구들과 나누는 문자 메시지는 단순하다. “뭐 해?” “왜?” “그냥” 등이 그 예다. 이 정도의 간단한 대화로 한 달 500건을 쓰는 것이다.

 

윤강군(右)이 집에서 아버지 윤호동씨, 어머니 함명숙씨와 함께 보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놀이’로 자녀와 대화의 문을 열어 나가는 것이 사이버 중독을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다. [사진=김성룡 기자]

◆e-미디어 다이어트 운동=윤군 부모가 아들의 컴퓨터·휴대전화 과다 사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e-미디어 다이어트 운동(youth.go.kr/event/diet/main.asp)’의 영향이 컸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스카우트연맹과 폭력없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협의회가 주관하는 e-미디어 다이어트 운동은 청소년의 인터넷·게임·휴대전화 중독을 막기 위한 캠페인이다. 컴퓨터·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고 가족과 함께 독서, 체험학습, 문화활동을 늘리자는 운동이다. 매달 둘째 토요일을 ‘e-미디어 다이어트의 날’로 정해 지역별로 가족 걷기대회, 체험 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윤군 가족은 좀 더 색다른 방법도 택했다. 세 가족이 동네 PC방으로 나들이를 간 것이다. 아버지 윤호동(40)씨는 “무작정 아들을 혼내고 컴퓨터를 못 쓰게 하기보다 대화부터 시도했다”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들이 즐기는 ‘놀이’에 대해 부모가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어머니 함씨는 “아들에게 게임을 배워 한 달에 한 번쯤 PC방 가족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며 “대신 앞으로 컴퓨터 게임은 하루에 한 시간 이내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인터넷 중독 상담 전문가인 김현수 사는기쁨신경정신과 원장도 “자녀를 나무라기보다 어떤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왜 하는지 등에 대한 대화부터 풀어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윤군의 어머니는 “아들에겐 컴퓨터 게임을 배우고 우리는 장기나 보드게임 등 집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가르치니 가족 간 대화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윤군은 이제 게임 하는 시간도 하루 30분 정도로 줄고, 문자 메시지 사용량도 한 달 50여 건 이내로 줄었다. 인터넷 대신 책을 읽고 공부하는 시간은 부쩍 늘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인터넷·게임 중독의 판단 기준에 대해 김 원장은 “초등생은 하루 2시간 이상, 중·고생은 4시간 이상 게임하는 날이 한 주에 한 번 이상이라도 있으면 위험성이 있다”며 “이 상태를 지나 시험기간에도 게임에 매달리고 일절 부모와 대화를 피하는 경우라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위원회에 따르면 1000만 청소년 중 3%에 해당하는 30만여 명이 치료가 필요한 인터넷 중독이며, 15%인 150만여 명이 기본적인 단계의 상담이 필요한 상태라고 한다. 김 원장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는 어려워도 게임 잘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게임에 몰두하면서 성취감이나 우월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현실 세계에선 알아주지 않는 ‘가짜 자기실현’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최근 갑자기 인터넷이나 게임에 빠져들게 됐다면 공부에 자신감을 잃었다든가 부모나 친구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다. 이럴 땐 컴퓨터 접근 자체를 막기보다 그 원인에 대해 조치를 해 줘야 한다. 김 원장은 “컴퓨터를 거실에 내 놓고 게임 시간을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배노필 기자 <penba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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