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엽의 '그림 읽기'] 神의 애무 받는 감미로운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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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에서는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는 예술의 흐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중 대표적인 움직임이 ‘바로크 양식’이다. 바로크라는 말은 거칠거나 울퉁불퉁하게 생긴 것을 뜻하는 포르투갈어로 원래 진주 채취업계에서 쓰던 말이 예술용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뭔가를 업신여기거나 비꼬기 위한 표현에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17세기 로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 새로운 예술양식은 인간의 진솔한 감정과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바로크 회화는 인간적인 이야기를 필수 소재로 택하고 있는데, 강렬한 명암 대비와 풍부한 색채, 자유롭고 유연한 움직임, 과장된 표현 등을 특징으로 한다. 고도의 형식미와 관능성을 강조하는 바로크 예술은 음악에서 바흐·비발디, 회화에서 렘브란트·루벤스·베르메르 같은 탁월한 예술가를 탄생시켰다.

이 예술사조는 조각에서도 많은 예술가를 등장시켰는데, 특히 이탈리아가 그 중심에 서게 된다. 그것은 조각의 가장 훌륭한 재료인 대리석 생산지라는 자연적 조건, 종교 권력의 중심지라는 정치적 조건, 그리고 동방 교역을 바탕으로 쌓아온 자본력 등을 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크 조각의 창시자로는 이탈리아 조각가 로렌초 베르니니(1598~1680)를 꼽을 수 있다. 서양 조각사에서 최고의 기량을 갖춘 작가로 평가되는 베르니니는 로마의 명물로 꼽히는 나보나 광장의 분수 조각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 이후 이탈리아 최고 조각가로 불리는 베르니니는 대리석에다 생명의 따스함과 피부의 미세한 경련까지도 표현해 당대에 이미 유럽에서 명성이 높았다. 특히 그는 그림에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생생한 느낌을 처음으로 조각에 도입해 회화보다 더욱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베르니니의 여인 조각은 너무나 생생한 관능미를 갖고 있어 종종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성 테레사의 법열’이다. 로마 산타마리아 델라 빅토리아 코르나로 성당에 있는 이 작품은 베르니니가 1645~1652년 제작한 것이다.

어두컴컴한 성당에 천장 창문으로부터 내려오는 빛을 받을 수 있게 의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신비한 느낌을 주고 있다. 더구나 이 작품은 여인의 표정이 오늘날 선정적인 영화포스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인들의 표정과 너무도 비슷해 놀랄 지경이다. 실제로 영화감독들은 에로영화의 여주인공들에게 이 조각의 표정을 참고하라고 권한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성 테레사 수녀의 꿈을 묘사한 그녀의 일기에서 유래한다.

“천사는 타오르는 금화살로 가슴을 꿰뚫는다. 그러나 그 고통은 지속되기를 바랄 만큼 감미로운 것이었다. 설령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기는 해도 그것은 신의 사랑에 의한 달콤한 애무였다.”

이것은 성녀의 환상이 지극히 감각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순교자들이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엑스터시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이 성당에 만들어질 당시 주교는 성녀의 표정이 성행위 절정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고 수정을 요구했지만, 베르니니는 주교가 어떻게 여인의 그런 표정을 알 수 있느냐고 응수해 자신의 의도를 그대로 관철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전준엽·화가·전 성곡미술관 학예예술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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