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된 '부동산 투자법칙'

중앙일보

입력

#1.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김모(43)씨는 요즘 살맛이 안난다. 지난해에는 매물이 나오는 대로 소화되며 호황을 누렸지만 올들어서는 변변한 중개 실적이 없다.

집값이 떨어지면서 매수세가 끊겨 전·월세 중개로 사무실을 근근이 운영할 정도다. 강남 아파트값이 오르면 한달 안에 목동까지 확산됐던 '강남발' 집값 상승 법칙도 깨진지 오래.

얼마전 강남 재건축이 오른다는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렸지만 상승세는 목동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2. 서울 노원구 상계동 중개업자 정모(39)씨는 부쩍 늘어난 매출 때문에 기분이 좋다. 수년간 꿈쩍 않던 노원구 일대 아파트값이 지난 연말 큰 폭으로 뛰더니 올해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계동에서 7년째 중개업을 하고 있지만 최근 1년 같은 호황은 없었다. 강남 집값이 뛰고 목동, 분당, 용인 집값이 덩달아 오를 때마다 배아파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최근 부동산 시장 트렌드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강 북쪽보다 남쪽' '소형보다 대형아파트' '연립·다세대보다 아파트' 등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부동산 투자 법칙들이 모두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서울 강남보다 강북 집값이 더 많이 올랐고 중대형보다 중소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경매시장에선 찬밥이었던 연립·다세대주택이 아파트를 제치고 투자 1순위 물건으로 자리잡았다.

한강 남쪽 집값이 북쪽보다 많이 오른다는 '남고북저'. 국민 모두가 수학공식처럼 외우고 있는 이 법칙은 올들어 무참히 깨졌다. 집값 상승 진원지였던 서울 강남은 약보합세를 면치 못하는 반면 대표적인 집값 소외지역이었던 서울 외곽과 경기 북부은 강보합세를 지속하고 있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집값은 2.9% 올랐다. 강북 평균 상승률이 4.6%로 강남(1.4%)을 압도했다.

구별로도 용산구가 11.9%로 상승률 1위를 차지했고 도봉구(6.8%) 중랑구(6.7%) 노원구(6.0%) 등 강북권이 뒤를 이었다. 반면 강남구(-0.4%)는 마이너스 변동률을 보였고 서초구(0.5%) 송파구(0.7%) 양천구(0.5%) 등도 서울 평균 변동률을 밑돌았다. '남고북저'가 아니라 '북고남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114 김규정 차장은 "강남불패론만 믿고 올해 강남 아파트에 투자한 사람은 크게 실망했을 것"이라며 "강남 집값이 뛰면 인근 지역이 함께 오르는 도미노 현상이 사라지고 저평가됐던 서울 외곽과 수도권 북부가 동반 상승한 것도 큰 변화"라고 말했다.

중소형아파트가 중대형보다 인기를 끄는 것도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풍속도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 102㎡(31평) 이상 아파트값 상승률은 1%대에 그쳤지만 102㎡ 미만은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수도권의 경우 102㎡ 미만은 6%대 상승률을 보인 반면 102㎡ 이상은 오히려 하락했다.

이같은 현상은 분양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지난달말 청약을 받은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반도유보라팰리스' 108㎡(32평형), 109㎡(33평형) 등은 최고 36.7대 1의 경쟁률로 1순위에서 마감되는 등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56~251㎡(47~76평형) 중대형은 2순위 접수에서도 대거 미달됐고 일부 평형은 3순위에서도 최종 미달됐다.

서울 중구 황학동 '황학아크로타워'도 전용면적 85㎡(25.7평) 이하 중소형은 최고 32.8대1의 경쟁률로 1순위에서 마감됐지만 중대형은 3순위에서야 겨우 모집가구수를 채웠다.

우리은행 안명숙 팀장은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보유세 강화 조치로 중대형 수요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며 "중대형보다 자금.세금 부담이 덜한데다 발코니 확장 합법화로 전용면적이 넓어진 중소형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매시장에서 연립·다세대주택이 인기몰이를 하는 것도 투자법칙만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연립·다세대는 아파트보다 환금성이 떨어지는데다 가격도 오르지 않아 그동안 투자자들이 외면했던 상품이었다.

경매정보업체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연립·다세대주택 낙찰가율은 100.9%로 아파트(93.1%)보다 높았다. 지난달 연립·다세대 낙찰가율은 110.4%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고가낙찰로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연립·다세대다. 지난 7월에는 송파구 44㎡(13.3평)짜리 다세대 물건은 100여명의 응찰자가 몰려 감정가의 3.5배인 2억2370만원에 낙찰됐다.

법무법인 산하 강은현 실장은 "연립·다세대는 아파트보다 적은 금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데다 DTI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인기를 끌고 있다"며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아파트 시장 침체가 이어질 경우 이같은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머니투데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