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여성 「성희롱사건」/책임한계 싸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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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국의 사례로 본 부분별 쟁점
▲개념:누드포스터 부착·성적인 낙서까지 포함
▲배상:사실 알고도 시정않을땐 상급자도 책임
▲구제:국가배상심의위 판정 거친뒤 소송내야
전 서울대 조교 우씨가 같은 대학 신모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재판에서 재판부(재판장 박장우 부장판사)가 18일 피고에 대해 3천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한 것은 국내 최초로 성희롱과 관련해 여성의 피해를 인정한 것으로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여성단체 인사들은 한결같이 법원의 이번 판결이 피고인 신모교수의 개인적 잘못을 강조,여성의 직장내에서 당하고 있는 성적 희롱을 남성 상급자와 여성 하급자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들이 성희롱 문제를 고용상의 불이익으로 간주하여 고용자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는데 반해 이번 판결은 최종인사권자인 대학과 국가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번 판결로 갖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성희롱에 대해 부문별로 알아본다.
◇성희롱의 개념=외국의 판결내용에 의하면 ▲여성에게 불쾌한 느낌을 안겨주는 성과 관련된 농담 ▲수차에 걸친 신체적 접촉 ▲성적인 유혹 등이 해당되지만 일단 이러한 행동이 직장내에서 업무와 관련된다는 것으로 한정된다. 또 ▲직장내에서 인사권을 지닌 상급자인 남성이 불쾌감이나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할 성적 언동과 접근을 지속하면서 이를 거부하는 여성근로자에게 인사상 영향을 미칠 때 ▲고용상의 불이익을 끼치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성적 접근으로 직장내에서의 여성의 근로환경을 불쾌하게 조성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한편 미국법원의 경우 「지속적이고 빈번한 조건」에는 두번의 키스와 세번의 팔 건드리기,그리고 여러차례의 모욕적 발언이면 성희롱에 해당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사무실내에 부착된 누드포스터,성적인 낙서도 포함시키고 있다.
◇피해보상청구=성희롱사건에 있어서 청구내용은 정신적 피해배상차원에서의 위자료이며 청구대상은 해당 상급자와 고용주 모두가 해당된다.
우 조교 사건의 경우 재판부는 감독자인 서울대와 국가에 관리감독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미국·일본 등 외국의 경우 고용주가 직장내에서 성희롱이 있다는 것을 알았거나 그것을 추정할 수 있었으면서도 즉각적인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책임지도록 돼있다.
◇구제요청 방법=무엇보다도 성희롱에 직면한 여성은 『안돼』라는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보여야 하며 가해자의 최상급자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동료들에게 알리거나 기록해놓아야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우 조교 사건에 있어서 재판부는 우 조교가 ▲강력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 ▲인사상의 불이익이 없었다면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한 것을 중시해 우 조교의 책임도 일부 인정,청구금액의 일부를 과실상계했다.
또한 여성 공무원으로서 직장내에서 상급자에 의해 성희롱을 당해 사용자인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에는 국가배상법 규정에 따라 국가배상심의위원회의 판정을 거쳐 법원에 소송을 내야 한다. 여성의 전화 이문우대표,이영자교수(성심여대 사회학) 등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선진국처럼 직장내에서의 성희롱의 사전방지를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아예 노사협약 등에 명문화해 고용환경을 성숙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한강희·강홍준기자>
◎“교수 매장시키려 한다” 따가운 시선에 고민/우조교 일문일답
18일 「서울대 여조교 성회롱사건」에서 승소한 우모씨(25)는 재판이 끝난뒤 법원청사 12층 기자실에서 「서울대 여조교 성희롱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대표,한국여성의 전화 이문우대표,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소장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우씨는 기자회견에서 소송을 진행해오면서 겪어온 어려움 등을 털어놓았다. 다음은 우씨와의 1문1답.
­지금 심정은.
『기쁘다. 나는 힘도 없는데 여성단체와 대책위 등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준 덕택에 버텨낼 수 있었다. 지금도 직장에서 나같은 일을 당하고도 참고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직장여성들이 용기를 갖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승소하리라고 예상했나.
『처음부터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대자보를 붙인 것이 학내문제로 발전했고 교수님이 먼저 나를 명예훼손과 협박으로 고소해 소송을 냈던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조교 재임용에서 탈락당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로 교수를 매장시키려 한다는 주위의 시선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또 소송에서 지면 지금 준비하고 있는 변리사시험 자격을 상실하게 될까 두려웠다.』
­부모님 반대는 없었나.
『처음엔 강력하게 말리셨다. 울면서 「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이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후로는 말리지 않으셨는데 무언의 응원이라고 생각했다.』
­신 교수에 대한 지금 심정은.
『가정이 있는 분인데 인간적으로 미안하다. 그분이 「잘못했다」는 한마디 사과만 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희롱에 관한 책을 냈다는데.
『「이것이 성희롱이다」는 책이다. 외국의 성희롱 사례에 대한 참고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하기 위해 번역한 것이 책으로까지 엮게 됐다. 이미 번역한 것은 참고자료로 제출했다.』<이은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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