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조사와 증인논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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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 국회 본회의 의결로 상무대 정치자금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권이 발동됐지만 증인채택을 둘러싼 여야간 이견으로 처음부터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정치자금 의혹에 대해서는 최초가 되는 이번 국정조사가 증인문제로 표류하거나 유야무야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여고,야고 증인채택에 있어 술수나 정치적 재주를 부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도 보면 여당은 국정조사에서 축소지향과 특정인 보호 의도를 드러냈고,야당은 한건주의와 정권에 대한 공세위주로 끌어가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번 경우에도 이런 여야의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가 되풀이될 기미가 벌써부터 엿보이고 있다.
상무대 정치자금 의혹은 시기적으로 노 정권 말기와 대선기간에 얽혀있고,의혹대상에 오른 인물들도 양정권에 걸쳐있는 보통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검찰수사가 의혹을 풀지 못한 것도 이런 복잡한 배경이 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런 사건을 조사하면서 여당이 처음부터 증인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특정인 보호의 저의를 가지고 임한다면 제대로 조사가 될리 없다. 여당이 「구체적 증거」가 있는 사람만 증인으로 부르자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증거가 있으면 더 조사할 필요가 뭔가.
야당도 이렇다할 근거없이 항간의 루머나 제보에 따라 이사람 저사람 함부로 부르자고 해서는 안된다. 고위공직자의 경우 증인으로 불려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 큰 피해가 될 수 있고,여기에 자칫 「청문회스타」를 꿈꾸는 한건주의가 판친다면 국정조사의 참뜻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 의혹을 처음 터뜨리면서 기세를 올리던 야당의 처음 모습과는 달리 국정조사권 발동이 현실화하면서 기묘하게도 조사위 참가에 소극적인 일부 야당의원의 자세를 눈여겨 보고 있다.
요컨대 문제는 진상규명과 의혹해소에 있다. 그러자면 필요한 증인은 당연히 불러야 한다. 조사에 들어가기도전에 누가 필요한 증인이냐를 두고 여야가 다툴게 아니라 합의가능한 증인에서부터 국정조사를 시작해 조사의 진행과 함께 추가로 증인을 선정해가는 방법이 현실적일 것이다. 처음부터 증인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조사계획서 승인이란 본회의 절차에서 조사자체를 유산시키는 일이 나올까 걱정스럽다.
벌써부터 신문들은 야당의 자료부족과 여당의 소극적 자세로 노 정권의 한두 인사를 희생양으로 삼는 용두사미의 국정조사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만일 검찰에 이어 국회마저 이런식으로 국정조사를 한다면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비난이 터질 것이고,상무대 정치자금 의혹은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는 여야가 이번에 아직도 실적이 얕은 국회 국정조사의 권위를 한단계 높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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