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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살아있다] 5. 동북아 상생(相生)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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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세계화 시대에 '민족적 관점'과 '국제적 시각'을 조화시켜나가는 하나의 시금석이자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중화민족주의적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양면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미경은 고구려사 자체를 보다 정교하게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민족주의 개념이 곳곳에서 도전받고 있기는 하지만, 식민통치를 경험하고 남북한이 분단된 한국의 특수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힘이다. 다만 고대사에 오늘의 민족과 국가 개념을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는 상식을 바탕에 깐 민족주의여야 할 것이다.

현미경이 국내용이라면 망원경은 국제용이다.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 지구촌 분쟁들의 배경에는 민족주의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고구려 역사 문제가 한.중 간 우호 관계까지 해쳐선 안 된다고 말한다. 국제사회.학계의 보편적 지지를 얻으면서 동북아 상생을 주도하는 역사 인식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장군총'. 지안시 각저총 내부의 벽화 '씨름도'.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유적. (사진 왼쪽부터)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1월 22일자 국제면에 "남북한이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주장에 강력 대응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간략한 사실 관계만 보도했다. 하지만 앞으로 고구려사 문제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우리의 높은 문화 수준과 역사의식, 학계의 연구성과를 국제사회에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고구려사를 비롯한 고대사를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시아라는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할 망원경도 필요하다. 중화민족주의에 기반한 고대사 왜곡에 대해 우리가 한국민족주의로 똑같이 맞선다면 갈등만 깊어질 뿐 제대로 된 해결책은 찾기가 힘들다.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 배경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보다 유연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보편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대응책이 절실하다.

만주사를 전공한 윤휘탁 동아대 연구교수는 "만주와 한반도의 연관성을 단절시키는 것이 중국의 궁극적 목적으로 보인다"면서 "이 시점에서 절제되지 않은 '애국적 행위'는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고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적이면서 세계화로 나아가는 길, 동북아 고대사를 통해 민족주의와 동아시아적 시각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고구려사가 동북아 상생에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게 하는 길이다. 그리고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이성을 조화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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