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술] 아프간 인질 사태가 남긴 것 <중> 종교의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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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클어진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의 그들에게선 51일 전 공항을 나설 때 보였던 환한 미소는 찾을 수 없었다. 피랍자 대표가 준비해 온 성명을 읽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자리에선 우리 사회에서 피랍사태를 바라보는 상반된 두 시각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성경 구절이 적힌 팻말을 들고 나와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형제자매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고개 숙이지 말라"고 외쳤다.

다른 한쪽에선 27세의 한 남성이 피랍자 일행을 향해 계란을 투척하려다 경찰의 제지로 연행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남성은 '계란 열사'라 불리며 인터넷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동안 배타적 종교집단의 횡포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한 네티즌의 발언은 비판적 분위기를 대변한다. 한 시민은 "무사히 돌아온 건 다행이지만 고생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손윤탁(중곡동 교회.장로회신학대학 겸임교수.선교학 박사) 목사는 "한국 기독교 100여 년 역사에서 이렇게 심한 사회적 비판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며 "평소 한국 교회에 대해 쌓이고 쌓인 시민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봉사와 선교, 기독교의 두 얼굴=한국 세계선교협의회 강승삼 사무총장(목사)은 "이번 사태는 단기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납치된 이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오랫동안 고아원.학교.병원을 세우며 봉사활동을 해온 분들까지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외국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도움을 줘야 할 때"라며 해외 봉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최갑수(서울대.서양사) 교수는 이번 사태를 기독교 선교의 역사 속에서 바라봤다. 최 교수는 "16세기부터 시작된 서구의 기독교 선교는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적 성격을 띠었다"며 "(그것을 모방한 우리가)이슬람이 국교인 곳에 가서 기독교가 선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봉사와 선교는 기독교의 두 얼굴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본질이 선교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초점은 선교의 자유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로 모인다.

손윤탁 목사는 "십자군식의 독선적.배타적.공격적 선교 방식은 분명 재고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독교의 본질인 선교 자체는 재고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목사는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기독교의 기본 성격은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라며 "사랑과 나눔의 선교 정신이 우리 사회와 잘 조화되는 방식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석만(종교학 박사) 충간문화연구소 소장은 개신교 단체들이 해외에서 학교.병원을 세우는 일을 '문명 선교' 혹은 '간접 선교'라고 정의했다.

장 소장은 "100여 년 전 조선의 유학자들이 서양 기독교에 대해 국가의 정체성을 흔든다며 경계하자 서양 선교사들은 직접 선교를 포기하고 문명 선교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며 "아프간에서의 개신교 선교 혹은 봉사활동은 서구 개신교가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의 방식을 본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본주의 종교관 충돌=기독교계 내부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않다. 주로 '배타적 선교' 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장로회신학대의 김영동(선교학) 교수는 "선교엔 타자가 있게 마련인데, 타자의 종교.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은 참다운 선교가 아니다. 선교의 자유는 선교를 받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받아들이는 쪽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한국이슬람교중앙회 김환윤 사무총장은 "실질적으로 봉사가 아닌 선교"라며 "전쟁 중인 아프간에 물자가 많이 필요하고 의료 서비스 같은 봉사도 요구되겠지만, 그 같은 물질적인 것들과 1000년 넘게 이어 온 종교적 양심을 바꾸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박정신(숭실대.기독교사) 교수는 "결국 자신이 믿는 바를 전투적으로 뽐내는 무모한 선교 방식이 문제"라며 "아프가니스탄에 사람들을 보낼 때 종교 훈련은 시켰겠지만 현지의 역사와 문화, 정치적 위험 등의 교육은 소홀히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한국인 인질들이 과연 살해당해도 좋을 만큼 대죄를 저질렀나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장석만 소장은 "인질들이 군인도 아닌데 추방하면 될 것을 가지고 살해까지 한 것은 극단적 탈레반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명분을 위해 인질을 악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소장은 "개신교든 이슬람이든 근본주의 세력이 결국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와 문화의 전반적 문제로 확대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차이를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가치관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종교계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동 교수는 "최근 유엔이 한국인들의 '단일 민족' 의식을 문제 삼았듯 우리 사회의 배타성도 함께 짚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석만 소장은 "남도 나만큼 존중받아야 한다는 자세가 삶 속에서 뿌리내리지 못해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해결책을 머릿속으로 상상한다고 해도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배영대.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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