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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으로 불교 개혁하라(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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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잘못된 일이면 바꿔야 하고,고쳐야 할 일이 있으면 고치는게 올바르게 사는 길이다. 속가도 아닌 수백만 불자들을 이끄는 조계종이 바꾸고 고치기로 결정한 일이 조금도 바뀌지 않고 고쳐지지 않은채 혼미만 거듭하고 있다. 조계사에 폭력을 끌어들인 혐의가 확실하고,총무원장 선출에 잘못이 있었음을 원로회의가 결정했다면 이후의 사태는 절차에 따른 무리없는 종단개혁으로 일사불란하게 추진됐어야 한다. 그러나 그후의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만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가장 큰 잘못은 총무원장 등 현 집행부가 아직도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부작용이라고 본다. 집행부 이외의 수많은 승려들이 그를 불신임했다면 몇달 남은 임기를 채운다고 해서 승려로서의 그의 지위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두차례에 걸친 총무원장을 통해 이룬 서의현원장의 공로가 있다면 오히려 지금 당장 자리를 떠나는게 무소유를 실천하는 높은 스님의 올바른 모습일 것이다.
두번째 잘못은 개혁 주도세력이라 할 범종추측의 지나친 무리수를 들 수 있다. 매사에는 절차가 있고 순서가 있는 법이다. 조계종의 오랜 숙원사업인 종단개혁을 추진하려면 보다 냉정하고 순리적인 방법과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10일 열린 승려대회에서는 대뜸 종정을 불신임하고 총무원 「접수」를 위한 난투를 벌였으니 종단 양분이고 내분이라는 인상만 주지 않는가. 종정 불신임은 우리 불교사에 전례없는 사태다. 종정불신임으로 개혁세력이 아닌 내분세력으로 비쳐질 때 개혁의 의미는 퇴색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두가지를 주장하게 된다. 하나는 이미 거듭 주장해온 바지만 현 종단 집행부는 남은 임기에 연연하지 말고 빨리 사태를 수습하고 물러나라는 것이다. 초연히 떠날 수 있을 때 새 시대에 부응하는 불교 중흥을 위한 개혁에 동참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또 진정으로 불교개혁을 주도하려는 세력이라면 범종추도 개혁을 혁명하듯 하지말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개혁이란 어디까지나 단계적이고 합법적이야 한다. 물러서는 사람의 퇴로를 막아서는 물러설 명분을 잃을 것이다. 불교계의 가장 높은 어른인 종정을 불신임하고서는 개혁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어렵다.
부처님이 지금의 조계종 사태를 어떻게 보실까를 생각하고,부처님의 근본정신으로 문제를 푸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교의 높은 정신은 회합에 있다. 물러서는 사람에게는 퇴로를 열어주고,개혁세력이 반개혁세력을 끌어안으면서 서로가 개혁을 향해 용서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진정한 의미의 불교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더이상 종단 양분이나 보수­급진의 대결구도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혁명하듯 개혁하지 말고 화합과 화해의 정신으로 오늘의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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