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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뜨거운 조계종 종권 공방/종교전문기자 이은윤 편집국장대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불법을 더이상 훼손해선 안된다/개혁열망이 「정부와 대결」로 변질/종정 불신임한 것도 모양새 구겨
『이 뭐꼬.』(시십마)
『들오리입니다.』(야압자)
『깨침에 이르기는 아직 멀었으니 코를 좀 비틀어야겠다.』
마조대사(709∼788년)가 제자 백장선사를 데리고 들판을 지나다 풀속에서 푸드득 나는 오리를 보자 시작한 선문답이다. 문답은 이렇게 이어졌다.
『어디 있노.』
『저쪽에 날아갔습니다.』
이때 대사는 쏜살같이 달려들어 백장의 코를 비틀어대며 『가긴 어딜가! 여기에 있지 않느냐』고 일깨워주었다. 백장은 『아야』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한 소식을 얻어 돈오의 문을 열게 됐다.
○이념갈등 우려도
그러니까 마조는 백장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설픈 논리체계와 분별심을 박살냄으로써 우리 모두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본체자성인 마음의 작용에 의해 분별이 생겨난다는 것만 알면 「이쪽」과 「저쪽」,「나」와 「오리」가 하나되는 물아일여,격물치지의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의 조계종 사태를 주시하면서 떠올려본 화두다.
10일의 전국승려대회는 나름의 여법성과 종단을 바로잡겠다는 「종교의지」에선 높이 평가받을만 했다. 그러나 전례없는 종정 불신임과 종단의 양분,40명 가까운 부상자 속출 등은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었다.
더욱이 총무원측·개혁파측·공권력 등이 난마처럼 얽히면서 순수한 개혁열망이 흔히 있었던 종권분규로 퇴색되는 것처럼 비쳐진 것은 참으로 불행한 국면이었다.
또 국면이 힘겨루기의 정치게임과 보수대 진보의 이념적 갈등으로까지 보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음도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려되는 국면변화에는 서의현 총무원장의 특유한 각개격파전술과 막판뒤집기,마키아벨리스트적이 돌파력 등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음흉한 형식」 벗길
그렇지만 추대과정이나 처신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종단의 상징이며 선출보다 한층높은 권위를 갖는 「추대」케이스인 종정을 자진퇴진이 아닌 불신임으로 옥죈 것은 별로 좋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종정문제는 추대 때부터 문중간의 뜨거운 경쟁과 열망을 담은 관심사였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공권력의 투입과 그 과정에서 빚어진 부상사태는 3자 모두가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겹겹산중으로 빠져드는듯한 오늘의 조계종 사태를 해결하는데는 무엇보다도 「음흉한 형식」을 벗어던지고 자질구레한 규칙들을 뛰어넘는 용기가 선행돼야 한다.
총무원측은 거듭 강조하거니와 대세를 잘 알고 현명한 결단을 속히 내리는게 옳을 것 같다.
○공권력개입 신중
개혁파는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반독재시절의 운동권 논리나 세속정치와의 연결고리를 조심해야 한다. 친여만이 아니고 친야도 똑같이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공권력 규탄에 매달려 정부와의 대결양상을 보이는 개혁과 공권력 규탄의 본말전도 양상을 보여선 안될 것이다.
끝으로 공권력은 거듭 천명한대로 종단 내부문제에는 개입을 삼가야 한다.
승려대회후 총무원청사 점거와 대치 과정에서의 투입은 비록 위험한 유혈폭력의 징조가 보였다 하더라도 좀 빠르지 않았나 하는 여론이 없지 않다는 점을 유의하는게 좋을 것이다.
공권력은 폭력과 동화사 통일대불 조성의 정부지원 35억원(국비 26억·대구시비 9억원),청우건설의 시주금 80억원 등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데 보다 힘을 기울이는게 마땅하다 하겠다.
조계종은 이제 종권 공방을 둘러싼 힘겨루기나 법정송사 등을 구태의연하게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대세인 개혁에 모두가 힘을 합해도 모자라지 않은가.
더이상 불법을 훼손해선 안된다. 불법의 쇠락은 불교뿐만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도 절대 반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본래의 불법으로만 돌아가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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