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안보정책 조정기능(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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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가 새로 발족됐다. 이 회의는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반도 안보문제에 기민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면서 종합적인 정책과 전략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7일 안보관계 장관회의에서 김영삼대통령의 지시로 이 기구가 구성된 것으로 보아 그동안 외교·안보팀이 빚어온 혼선과 관련해 정책을 총괄하고 조율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대통령이 절감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 새로운 기구의 구성을 보면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기대해보자는 안도감이 들면서,또 한편으로는 이번에는 제대로 될까 하는 걱정도 숨길 수 없다. 안도감이 든다는 것은 이제 대통령이 혼선을 빚어온 외교·안보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보다 훨씬 심도있게 챙기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의를 1주일에 한번씩 열도록 정례화한 것이라든가 회의 구성원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강한 점 등에서 그러한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난 1년동안 북한 핵문제를 중심으로 정부가 갈팡질팡해온 경험으로 미루어 과연 다른 면모를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새로운 기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기존의 기구가 제대로 기능해오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 없다.
외교·안보정책을 조정하고 최종적으로 수립하는 기구로서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안보관계 장관회의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또 통일원장관이 주재하는 통일관계 장관회의도 열려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집행하고 추진했던 외교·안보관계 정책들은 이러한 기구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조율한 결과로 국민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라는 것은 국민에게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보다는 불안과 불신을 갖게 한 면이 적지 않았다. 각 부처간의 불협화,전략부재,협상기술 미숙,일관성 결여 등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북한 핵문제를 두고 지난 1년간 정부가 취해온 행적을 보면 원칙없이 갈팡질팡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실패를 거울삼아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는 그동안 비판받아온 외교·안보팀의 손발을 맞추기 위한 기구로 끝나서는 안된다. 장기적이고도 신중한 정책이 토론되고 채택되는 회의가 돼야 한다.
지금까지의 정부정책 중에는 단기적인 처방이 임기응변식으로 반영된 면도 적지 않았다.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새로 구성된 회의에서 충분히 논의돼야 할 것이다. 또 전략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해 상대방에게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에게 알려야 할 것까지 감추어서는 안된다. 이런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풀어나갈 때 정부는 신뢰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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