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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할 수 있다] 1. 1백명 당선무효 각오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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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때 민주당에서 자민련에 '임대'되면서 '한마리 연어'가 될 것을 다짐했던 송석찬 (열린우리당)의원. 그는 지난해 10월 지역구민 1천여명에게 인천 월미도와 충청도 삽교천 등지에서 푸짐한 생선회 파티를 열었다. 관광버스만 24대를 전세했다. 이날 하루 동안 宋의원 측이 지출한 돈은 약 2천5백만원. 버스 전세비로 8백40만원, 횟값으로 1천6백만원이 나갔다.

한나라당 수도권 출마 예정자인 Y씨는 'M포럼'을 운영 중이다. 지역정책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지만 실적은 전무하다. 지난해 이 포럼의 임원들은 세미나 대신 주민 1백여명을 모아 강릉 경포대 관광에 나섰다. 물론 밥값 등 행사비용 8백여만원은 Y씨 측이 전액 부담해 주민들은 공짜 관광을 누렸다. 이는 기부행위 제한기간(지난해 10월 18일부터) 이후 조직을 동원해 불법을 저지르다 선관위에 적발된 사례 중 일부다.

지난 6일까지 석달이 채 안 되는 동안 이런 불.탈법 행위가 6백21건 적발됐다. 최악의 타락선거로 꼽히는 16대 총선 당시엔 같은 기간 중 6백43건이 걸려들었다.

대선자금 수사로 기업이나 여야 중앙당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밑바닥은 다르다. 오히려 선관위의 눈을 피한 신종 불.탈법 수법은 더욱 교묘해지는 추세다. 기부행위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지역구민 2천명에게 배구경기 입장 티켓을 보낸 경우도 있다. 어떤 인사는 경로당에 효자손을 무더기로 나눠줬고, 출마 예정자 B씨는 돈을 주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PC방에 진을 치게 한 뒤 인기투표를 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종일 자기 이름을 클릭하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찜질방이나 노래방 등을 아지트로 해 주부들을 모아 대접하고 입당 원서를 받는 일은 일반화하는 추세다. 공천자를 결정하는 경선에서 이기려면 자기 측 사람이 선거인단에 많이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미리 입당 원서를 많이 받아두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돈이 들 수밖에 없다.

기자와 만난 열린우리당의 한 수도권 지역 출마 예정자는 "현재 1천2백장 정도 입당 원서를 확보했다"며 "경쟁자들은 2천장 이상 모은 것으로 안다"고 실토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한나라당 출마 예정자는 중앙당에 "꼭 내가 후보가 안 돼도 좋으니 경선만은 붙이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돈쓰는 선거의 주범인 조직선거 풍토엔 변화가 없다.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은 "그냥 주머니가 샌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실상을 살펴보자. 선거 때 유력 정당의 후보들은 한 동(洞)마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50명씩 조직원을 가동한다. 동별 협의회장.여성회장.청년회장.지역장.활동장.총무.고문 등의 직책을 주고, 이들로 하여금 노인정.친목계.산악회.아파트 부녀회 등에 발품을 팔게 해 자신을 선전한다. 자금이 풍족한 후보의 경우 동 책임자에게 들어가는 선거 자금이 투표를 마칠 때까지 2억~3억원이라고 한다. 10개 동이면 20억~30억원, 20개 동이면 40억~60억원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다 출마 예정자들은 '○○연구소' '△△포럼' '××산악회' 등의 사조직을 굴린다. 사조직 관리에도 많은 돈이 필요하다. 선관위가 파악 중인 출마 예정자들의 사조직은 1천2백25개다. 그래서 16대 총선에서 나돌던 '30락 50당(30억원 쓰면 낙선, 50억원이면 당선)'을 넘어 1백억원 이상은 들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이번엔 예비 선거격인 당내 경선까지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구태에 젖은 유권자들도 여전하다. 열린우리당 K의원은 "지역구 내 식당에 갔더니 그곳에서 마주친 주민 7~8명이 내 얼굴을 보고 '오늘 술값 안 내도 되겠네'라며 좋아하더라"고 기막혀했다. 한나라당.민주당.열린우리당의 선거 관계 당직자들은 입을 모아 "지역에서 말발깨나 있는 유지나 브로커들이 후보에게 돈을 요구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곳곳에 험담을 퍼뜨리는 행태가 고쳐지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건네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 특별취재팀=김교준.이하경 논설위원, 강민석.강갑생 정치부 기자, 정선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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