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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의 눈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호 02면

서울 최초의 공창 지역으로 기록된 ‘신정 유곽’ 전경. 1904년 서울 남산 쌍림동(현 중구 묵정동 소피텔 앰배서더호텔 근처)에 설치됐다. 휘날리는 일장기가 인상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미아리’는 ‘종3’만큼 유서 깊은 지명입니다. 지리학적 주목도보다는 문화·사회사적 연구 대상이라 할 수 있겠지요. 유행가에도 나오고 역사적 사연도 그윽한 곳이지만, 역시 그보다는 평균 한국 남성들 대부분에게 호기심과 객기가 충만했던 한때를 회상케 하는 생활사적 뜻이 더 클 듯하네요.

순화동 편지

참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청춘의 에너지를 잡지 열독이나 독수리 오형제 활약으로 평정하다 과부하가 걸리면 찾아가던 곳(영화에서 보니 미국 청소년들은 그걸 사과파이로 풀기도 하더군요), 군대 가기 전에 친구들이 ‘뭐(!) 떼라고’ 십시일반 추렴해 데려가던 곳…. 월곡파출소 관할 ‘미아리 텍사스’가 한국 현대사에 흘린 정수는 다 헤아릴 수가 없겠지요.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홍성철씨가 쓴 『유곽의 역사』(페이퍼로드 펴냄)는 제목으로 일단 흥미를 끄는 책입니다. 지은이가 지난해 석 달에 걸쳐 전국의 집창촌(集娼村)을 샅샅이 뒤져 썼다는 이 보고서는 유곽(遊廓)이란 것이 얼마나 끈질긴 공간인가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듭니다. ‘집창촌 100년의 시간여행’이란 프롤로그에서 홍씨는 “단순한 과거의 정리가 아니라 살아 꿈틀거리는 현 욕망의 거리에 대한 진단”이라고 말하지요. 여기서 ‘100’이란 숫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창(私娼) 골목인 부산 완월동이 생긴 지 100년이 되는 해라 붙인 거라네요. 그는 2007년 9월 23일이 성매매특별법 제정 3주년임을 상기시키면서 한마디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집창촌이나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들이 선은 아닐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어떻게 실타래를 풀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몇 쪽 읽다가 이 책을 보여줘야 할 이가 떠올랐습니다. 며칠 전 만난 소설가 공지영씨입니다.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가족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마무리한 그는 성매매 여성이 요즘 자신의 관심사라고 말하더군요. 기자 뺨칠 취재의 힘으로 소설을 꾸려가는 그는 사형수를 다룬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으로 이미 한국 사회에 사형제도에 대한 큰 물음표 하나를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에 이어 우리 사회의 어둠 속에 돌아앉았던 여성을 보듬어 안겠다는 희망을 내비치는 그의 눈이 반짝이더군요.

식민지의 슬픈 역사와 고도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사창가 100년의 역사가 이렇듯 책으로, 문학으로, 정당하게 이야기되면 ‘미아리의 눈물’도 좀 마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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