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세·감면 남발 …‘누더기’ 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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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각종 비과세·감면제도 남발로 세제가 ‘누더기’로 전락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서 쏟아진 요구에 비과세·감면은 현 정부 들어 크게 늘었다. 심지어 세금을 깎아 주는 폭이 세수 증가 폭보다 큰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출범 초 노무현 정부가 공언했던 짜깁기식 비과세·감면 일제 정리 방침과도 거리가 멀다.

 비과세·감면은 한 번 도입하면 없애기가 쉽지 않다. 수혜 계층의 강한 반발 때문이다. 게다가 지나친 세금 감면은 경제의 흐름을 왜곡할 수도 있다.

 그동안에는 부동산 관련 세금이 많이 걷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2003년 이후 4년 동안 부동산과 관련해 거둔 세금은 100조4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 관련 세금도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냥 세금을 깎아줘서는 나라 살림을 제대로 꾸려 갈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급증한 비과세·감면=29일 재정경제부의 ‘2006년 경제백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비과세·감면 규모는 총 91조7454억원에 달했다. 평균적으로 매년 9.2%씩 감면 액수가 늘어난 것이다. 반면 국세 수입은 같은 기간 103조9678억원에서 138조443억원으로 증가했다. 평균으로 따지면 매년 7.6%씩 늘어나는 데 그친 셈이다. 깎아준 세금의 규모가 더 거둔 세금보다 빠르게 늘었다는 얘기다. 그만큼 세수 기반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세를 깎아준 비율인 국세감면율(국세감면액/국세수입총액+국세감면액)은 꾸준한 증가세다. 2002년 12.4%이던 감면율은 지난해 13.3%까지 올라갔다. 나라가 벌어들이는 세금 가운데 10분의 1 이상을 각종 명목으로 깎아주고 있는 셈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세금 감면 정책이 영구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실효성이 낮은 조항은 폐지해 국세 감면율을 계속 낮춰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말뿐인 비과세·감면 정리=2003년 정부는 ‘중장기 조세개편 방안’을 내놓았다. 매년 되풀이되는 세제개편이 정치 바람을 타지 않도록 중장기 로드맵을 미리 만들어 놓겠다는 취지였다. 짜깁기식 비과세·감면제도를 과감하게 정리해 ‘넓은 세원 낮은 세율’로 세제를 정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 방침은 ‘구두선’으로 끝났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2000~2006년 일몰이 돌아온 비과세·감면제도 257개 가운데 예정대로 폐지된 제도는 71개로 27.6%에 불과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건수상으론 일몰 시기가 도래한 22개 가운데 10개 제도를 폐지했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 보면 ‘중소기업 경영컨설팅 구매비용 세액공제’ ‘공동전산망을 이용한 화물 운송 위탁 시 운송비에 대한 세액공제’ 등 지원 규모가 미미한 제도가 대부분이다. 감면 규모가 최대 수조원에 이르는 ‘농어업용 유류세 면제제도’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손도 못 댔다.

 ◆선심성 비과세·감면은 위험=올해는 대선을 앞두고 각종 비과세·감면제도가 더 늘었다. 지난달 나온 ‘국가균형발전종합대책’은 지방에 창업·이전하는 기업에 최고 70%까지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외에도 ‘세액공제 확대’ ‘취득·등록세 감면’도 수두룩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세금 감면·비과세 법률안은 34개나 된다.

 중앙대 행정학과 박희봉 교수는 “선심성 세금 깎아주기로 차기 정권에 재정적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며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은 한시적으로 신중하게 도입하되 일몰 시한이 되면 무조건 폐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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