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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아시설이 급한 이유(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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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9일과 10일 서울 관악구 봉천5동과 신림7동의 영세민 가구와 탁아소 등 복지시설의 실태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이 두 동네는 한강변 침수지역 철거민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농민 1만2천2백75가구 4만1천7백45명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대표적인 「달동네」다. 요즘 달동네사람들의 삶을 그린 『서울의 달』이라는 TV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직접 살펴본 달동네사람들의 생활은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것과는 비할 수 없이 암울한 것이었다.
주택규모는 주로 8평,그나마 1평 남짓한 방 두개중 하나는 거의 세를 주고 있어 가구수가 주택수의 거의 2매나 되었다. 게다가 게딱지 같은 주택중 거의 70%가 무허가였다. 생업은 대다수가 남녀 구별없이 막노동과 노점상 등. 그래서 아침엔 인력시장이 자연스레 형성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두 동의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이라고는 4백31가구 9백90명의 거택 및 자활보호자를 대상으로 가구당 월 5만∼6만원 상당의 양곡과 부식비 등을 지급하는게 고작이었다. 거택 및 자활보호자의 기준이란 것도 월소득 16만∼17만원이 상한선이었다.
이런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국민 모두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 주는건 먼훗날의 꿈이라 할지라도 생존을 위한 최저생계비는 마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재정에 의한 일방적인 최저생계비 보장은 우리 현실로서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스런 해결책이라고도 볼 수 없다. 노동력이 있으면서도 끝없이 의존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유대교의 경전인 탈무드엔 「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기술을 가르쳐주라」는 가르침이 있다. 노동력이 있는한 절대빈곤층에 대한 지원방향도 그러한 방식이 되는게 바람직하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빈곤층은 선진국의 빈곤층과는 달리 자립의지,자녀교육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따라서 우리의 복지정책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일터에 나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춰 주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많은 달동네 여인들은 노동 의욕이 있고 맞벌이의 기회가 있어도 자녀때문에 발이 묶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는 직장이나 거주지에 탁아소를 세우는 일이다. 어린이집 등 탁아시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보육대상에 비한 시설 수용능력은 전국적으로 12%인 것이 현실이다. 서울의 경우 생계를 위해 절대적으로 탁아시설을 요구하는 저소득층 자녀의 수용률도 65%밖에 안된다. 어린이들만 밖으로 잠긴 집에서 놀다 불이 나서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도 이런 현실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정부와 사회는 힘을 합쳐 이 탁아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달동네 사람들에게 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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